<걸어서 삼국지 기행 44 산시성편> 3-1. 제갈공명, 정군산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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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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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묘에 안장된 제갈량(공명) 무덤. 봉분 옆으로 서 있는 황과나무는 살아서 못다한 부부의 정을 잊기 위해 나무로 다시 태어난 황부인이라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한중(漢中) 시내를 뒤로하고 취재진은 차량으로 40여분을 달려 면현((勉縣)에 도착했다. 한중 중심가에서 약 5㎞ 서북쪽에 위치한 면현은 삼국지 영웅들의 최대 격전지이자 제갈량의 묘가 있는 정군산((定軍山)이 깃든 곳이다.

이른 아침인때문인지 천지사방을 뒤덮은 안개가 이날 따라 유난히 짙었다. 아니나 다를까, 면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정군산으로 달려갔는데 안개가 많이 끼어 있고, 겨울철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라 입장이 안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입구에 서서 정군산 위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삼국지 영웅들의 함성소리와 창칼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다.

정군산은 유비와 제갈량이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한중을 차지하고 삼국 통일을 이루기 위해 무기를 갈고 닦으며 전쟁을 준비한 군사요충지이다. 유비가 촉(익주)을 차지하고 난 뒤 북쪽으로 위나라 군사를 물리쳐 확보한 곳이다.
촉군의 군사요충지가 된 정군산은 제갈량이 죽어서도 묻히길 원한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사진은 정군산 입구.


이때 벌어진 싸움이 유명한 정군산 전투다. 유비의 맹장이자 노장인 황충이 조조의 최고 무장 하후연과 맞붙어 이긴 전투로, 하후연이 이곳에서 전사했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정군산 기슭의 높은 산과 험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어만 한 덕이었다.

정군산은 제갈량에게도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한중에서의 8년은 그가 유비를 도와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보낸 기간 중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시기였다. 제갈량은 이곳에서 군대를 정비하고 기량을 갈고 닦으며 대업 달성의 부푼 꿈을 키웠다.

그는 오장원에서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던 순간 “정군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비록 천하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정군산에 묻혀 나라를, 백성을 자신의 온 몸으로 지키고자 한 제갈량의 충정과 애민의 정신이 담긴 것이라고 현세 사람들은 해석하고 있다.

혹자들은 정군산 밑에 그가 묻인 무후묘가 따로 있음에도, 산 전체를 제갈량 무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갈량이 잠들어 있는 무후묘 입구.
정군산 숲속을 거닐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신히 달래며 산 아래로 내려오니, 무후묘(武侯廟)가 정군산 자락에 감싸인 채 자리잡고 있다. 무후는 유비의 아들이자 후한의 황제가 된 유선이 제갈량에게 내린 시호다. 제갈량은 살아서는 무향후, 죽어서는 충무후로 불렸다.

무후묘는 제갈량 사망 직후에 조성된 것으로 17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체적으로 작고 아담한 분위기다. 생전 청렴결백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제갈량의 품성을 그대로 닮아 있다.

제갈량은 “정군산에 묻되 묘지는 관만 넣을 정도의 크기로 하고, 염할 때는 평상시 입던 옷으로 하며, 매장품은 넣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현지에서 만난 안내원은 “무후묘가 1700년이 넘도록 훼손되지 않은 것은 다른 무덤과는 달리 매장품이 없어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령 1700년된 측백나무로 무후묘를 지키고 있다.
묘지 안에는 여기저기에 오래된 측백나무가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제갈량이 54세에 죽어 당시 54그루를 심었는데, 그 중 22그루가 아직도 살아 무덤을 지키고 있다. 이 나무들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중국인들에게는 귀한 국보로 여겨지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갈량을 조각해놓은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날카롭고 반짝이는 눈빛이 곧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지혜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제갈량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조각상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갈량 동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700년 전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이 소를 타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은 채색화 ‘황승언답설선미도(黃承彦踏雪選媚圖)’가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초야에 묻여 살던 제갈량의 지혜와 사람 됨됨이를 알아본 황승언은 직접 그를 찾아가 딸과 혼인을 시키고 사위로 삼았다. 하지만 거의 전쟁터에 살다시피한 제갈량과 황부인은 전생에서 부부의 정을 깊이 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제갈량의 무덤에는 봉분 옆에 황과수(黃果樹)라는 이름을 가진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제갈량의 아내인 황부인을 상징한다. 그녀가 살아 못다 한 부부의 정을 다하기 위해 죽어서 남편의 무덤 옆에 나무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내려져 온다.

무덤 주변에는 빨간색의 천이 여기저기 휘감겨 있다. 향을 피우고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중년 남성의 모습도 보인다.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거나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지혜의 화신’으로 불리는 제갈량의 묘를 찾아 방법을 강구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보통 무덤은 남쪽에 머리를 두고, 북쪽에 발이 오게 배치한다. 하지만 제갈량 무덤은 서쪽에 머리를 두고, 동쪽에 발을 놓았다. 살아서 성취하지 못한 북벌의 꿈을 죽어서라도 이루려는 집념때문이었을까.

중국에 있는 무후사는 약 2000개로 면현에 있는 것<사진>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무후묘를 나와 바로 인근 무후사(武侯祠)로 향했다. 면현 무후사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2000개가 넘는 제갈량 사찰 중 유일하게 황제(유선)가 조서를 내려 만든 사당이다. 그런 의미로 ‘천하제일무후사’라고도 불린다.

무후사는 성도에 있는 것이 가장 크고 화려하지만, 면현의 무후사는 그보다 50여년 먼저 지어졌다. 현존하는 무후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당은 대문(大門)·이문(二門)·악루(樂樓)·사정(祠亭)·대전(大殿) 등으로 이뤄져 있다. 대전(大殿) 안에는 제갈량의 앉은 상이 안치돼 있고, 좌상의 양측에는 관우의 아들 관흥(關興)과 장비 아들 장포(張苞)의 입상이 있다. 관흥과 장포의 동상은 무후묘에도 있는 것인데, 이곳에 있는 동상들의 손에 든 칼과 창이 더 크다. 집밖에서 제갈량을 수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다.

무후사에도 수령 1700년 된 측백나무가 제갈량이 만든 팔궤도 원리에 따라 64그루 심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16그루만이 살아 무후사를 지키고 있다.

사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청나라 옹정제가 내린 ‘한승상제갈무향충무후사(漢丞相諸葛武鄕忠武侯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아래‘충심이 하늘을 찌르다’라는 의미의 청 가경 황제의 ‘충관운소(忠貫雲宵)'라는 편액이 있다.

이것은 특이하게 낙관(落款)이 편액의 글자 정중앙 위쪽에 찍혀 있는데, 황제가 쓴 것이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제갈량이 뛰어나다 해도 황제가 그보다 높다는 것을 일컫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지혜의 화신인 제갈량에게 지혜를 갈구하는 제를 드리기 위해 무후사안에 마련된 단상.
사당 끝쪽에는 한강(韓江)을 사이에 두고 정군산이 바라다 보인다. 우리 취재팀이 찾았을대는 안개 때문에 겨우 산자락이 보일까 말까했다. 그 옛날 제갈량은 이곳에 있던 정자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정군산에 주둔해 있는 군사들을 살폈을 것이다.

중국의 한강은 창강의 지류로 한중시 닝창현에서 시작된다. 후베이 성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질러 성도 우한에서 창강과 합류한다. 제갈량은 이곳에서 바다같은 한강을 건너 10만여명의 정군산 병사들을 호령했는데, 연꽃등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강의 물이 거의 매마르다시피 했지만, 그 때는 강이 너무 깊어 귀신이 산다는 소문도 무성했다고 한다.

한강과 정군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제갈량이 짙게 드리운 안개를 헤집고 사당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정자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자신이 끝내 못 이룬 삼국 통일의 염원을 성취한 후대들을 향해 흐믓한 미소를 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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