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섬서성편> 4. 촉의 명장들, 한중을 수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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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3-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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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후한의 후예를 자처한 촉한(蜀漢)에는 명장이 많았다. 촉의 황제가 된 유비의 휘하에는 그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고 의형제가 된 관우, 장비를 비롯해 제갈공명, 조자룡 등 삼척동자도 알만한 걸출한 인물들이 셀수 없이 많이 있었다.

나관중 스스로가 한(漢)정통론에 바탕을 두고 삼국지연의를 쓰다보니 촉의 명장들이 사실에 비해 과장된 채 그려진 점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 의리를 중요시 여겨 유비를 따랐던 용맹한 이들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를 통틀어 용맹한 장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초(馬超)다. 그는 관우, 장비, 황충, 조운과 함께 유비로부터 촉의 5호 대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걸어서 삼국지 기행' 취재팀은 한중시 면현(勉縣)에서 무후사(武侯祠)를 둘러본뒤 마초묘(馬超墓)로 향했다. 무후사보다 면현 시내 방향으로 더 안쪽에 있는 마초묘는 인적이 드물었다. 무후사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시간 관계상 분위기가 비슷한 마초묘는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고 안내원은 귀뜸했다.

한위후사(漢威侯祠)라고 쓰인 마초묘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마초가 조조를 이긴 유명한 일화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조조는 일생동안 싸움에서 패한게 딱 3번인데, 그 중 2번은 마초에게 패한 것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보면 사면초가에 빠진 조조는 도망치다가 눈에 띄자 자신의 붉은 마토 전포를 벗어던지고, 이어 수염까지 짜르고 도망친다. 죽을 위기에 조홍화 하후연이 달려와 위기를 모면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마초묘는 마초의 사당과 무덤으로 돼 있었는데, 둘레가 56m, 높이가 3m가 넘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흙으로 빚은 마초의 좌상(坐像)이 눈에 띈다. 이 조각상은 오랜 시간 풍화되고 파손돼 색상을 다시 칠했다고 한다. 마초 무덤은 입장객이 드물어 제갈량 사당 입장 티켓을 구입하면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마초묘 제일 가장자리에 위치한 무덤에는 제갈량 무덤에 있던 황과나무처럼 큰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이 나무는 누가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한 것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마초를 따르고 싶어한 어느 이름없는 병사의 환생은 아닐런지.

마초는 강족(羌族) 출신인 마등의 아들로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 출신이다. 자는 맹기(孟起)다. 마초가 후한에 반란을 일으키자 부친 마등이 조조에게 참수당한다. 마초는 한수(韓遂)와 연합해 조조와 싸웠지만 조조의 계략으로 패하고 말았다.

마초는 다시 만족(蠻族) 사람들을 모아 양주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대했으나 실패하고 유비에게 투항해 촉한의 장수가 됐다. 이후 승진해 태향후에 봉해진다. 마초가 받았던 표기장군은 당시 살아있던 장비의 벼슬인 거기장군보다 한 단계 높았다. 마초에 대한 유비의 대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초는 이듬해인 222년에 47세로 병사(病死)한다. 유비 휘하에 들어간지 8년만으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지 안내원은 중국에는 ‘삼국지 영웅은 마초’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 이유는 조조를 두번이나 이기고 싸움마다 용감무쌍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촉에서 마초의 한계는 분명 있었다. 위연과 마초는 모두 용맹했지만, 두 사람 다 투항해 유비한테 온 인물이다. 아무리 인사를 공평히 해도 두사람에게 있어 이는 뛰어 넘을 수 없는 장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초는 용맹함을 지녔지만, 지모가 모자라 성정이 순후하지 못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현대에 와서는 마초의 이러한 성격을 따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 넘치는 남자다움’을 ‘마초스럽다’, ‘마초남’ 등으로 합성해 쓰기도 한다. 남자의 거칠고 힘만 앞세우며 덤비는 단순 무식한 성격을 뜻하기도 한다.

소설 삼국지를 보면 장비와 마초가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장비와 마초는 새벽에 싸움을 시작해 밤까지 계속 겨룬다. 결국 유비의 만류로 싸움이 중단되지만 그 만큼 마초는 용맹함의 대명사로 전해져 온다.

마초묘에서 성도 방향으로 30분 정도 걸어가면 양평관이 나온다. 같은 날 오후 취재진은 마초묘에서 나와 양평관으로 향했다. 주변 채소밭들 사이로 높이 솟아 있는 성이 보인다. 옛 양평관은 거의 붕괴돼 지금 서 있는 것은 일정 부분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자연적 지형으로 볼때 양평관은 전략적으로 더할나위 없는 요충지임이 분명했다. 현지 안내원은 "삼국시대 위나라와 촉나라가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간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중의 가장 서쪽에 있는 양평관은 진령산맥과 대마산, 한강 등으로 둘러싸인 채 우리 취재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는 '한사람이 잘 지켜내면 만명이 들어와도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성과 공성에 유리한 곳이었다.

당연히 한중을 차지하기 위한 위와 촉 간의 전쟁이 양평관을 놓고 자주 벌어졌다. 하후연이 황충의 칼에 맞아 정군산에서 죽음을 맞자,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정군산으로 달려오지만 결국 또다시 패하고 만다. 조조가 양평관으로 물러나자, 유비는 제갈량에게 임무를 부여해 장비와 위연에게 조조군의 군량미를 끊고 황충과 조운에게 양평관 주변의 산에 불을 지르라는 명령을 내린다.

조조는 부하 허저에게 정예병 1000명을 내주어 식량을 호송하도록 했으나 허저는 술을 마시고 식량을 호송하다가 장비의 기습 공격으로 크게 패해 상처까지 입고 후퇴한다. 그리고 조조는 곳곳에 매복한 촉군과 장비, 조운, 황충의 협공으로 양평관이 포위되자 후퇴하고 겨우 야곡 경계로 도망쳤다.

이에 조조의 셋째 아들 조창이 지원군을 이끌고 와 유비의 부하 오란을 죽이고 아버지 조조를 만나 다시 반격을 꾀한다. 그러나 유비는 유봉과 맹달에게 군사 5000명을 내보내 조창을 격파시킨다.

영채에 돌아온 조조는 계륵의 뜻을 알아챈 행군주부 양수를 처형하고 다시 공격을 한다. 하지만 마초가 뒤에 나타나 조조군의 영채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조조는 위연의 화살에 맞아 큰 상처를 입고 죽을 뻔 하고 후퇴한다.

조조는 결국 한중을 포기하고 퇴각했다. 이 때 내린 암호가 유명한 고사성어 ‘계륵’(鷄肋)이다. 닭의 날개를 뜻하는 계륵은 먹기도 아깝고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이나 상황을 일컫는다. 당시 한중을 놓고 벌인 유비와의 싸움에서 조조의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낸 단어다.

양평관 주변 한중 사람들은 전쟁으로 양평관 태수가 자주 바뀔 때마다 그들의 입맛과 성격에 맞춰 받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추앙받은 인물도 없지 않다. 한중 사람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유비나 조조가 아닌 장로와 위연이다.

양평관은 AD191년에 장로(張魯)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장로는 이곳에서 25년동안 생활을 했는데, 당시 법이 종교적인 것이어서 큰 법을 지어도 혼자 단죄했다.

장로는 할아버지 장릉(張陵)이 창시한 오두미도(五斗米道)를 전파한 사람이다. 그는 쌀을 가져다가 역전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라, 기회가 되면 먹은 만큼 다시 가져다 놓거나 돈을 내도록 했다. 여기에 감복받은 사람들은 오두미도를 믿기 시작했고, 장로를 좋아했다.

이곳 사람들이 숭상한 또 한명의 인물은 위연이다. 유비는 한중을 가진 후 마초와 위연한테 성을 지키게 했다. 위연은 촉나라가 양평관을 차지한 이후 첫 태수가 된다. 그는 농업위주 경작, 잔도 등의 길을 많이 냈다. 후에 제갈량이 북벌에 나설 때도 위연이 모두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했다.

한중사람들은 당연히 먹고 살게 해 준 위연을 높이 평가한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위연 조각상이 한중에만 있을 정도다.

지금의 양평관 인근마을은 비옥한 토지를 가졌지만 잦은 홍수로 농사를 제 때 짓기 힘들다고 한다.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죽음은 없지만, 그 때 그 시절 장로나 위연 같은 태수들은 지금 이곳 사람들 마음속에 또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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