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조용성 특파원) 백금식 중국 자하문 회장이 중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한중수교가 이뤄지기도 전인 1991년 5월이었다. 당시 서울의 음식점 체인인 ‘서라벌’에서 근무하고 있던 백회장은 본사의 중국진출이라는 임무를 띠고 홍콩을 경유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991년 5월의 베이징은 그야말로 척박했다. 거리에는 엉성한 아스팔트 포장으로 흙먼지가 날렸고 자전거를 타는 중국인들의 행렬은 장관을 이뤘다. 수교하기 전이라 한국인들도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대표부와, 상사원들을 다 합해봐야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베이징에는 조선족도 찾기 힘들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수도, 화장실, 공중질서 등 생활의 기본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 숨가쁜 첫날을 보낸 백금식 회장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음식점 사업성공을 위해 베이징 땅을 밟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폐부를 엄습했다.
백금식 회장은 1991년 5월 베이징 량마허(亮馬河)호텔 1층으로 한식당 ‘서라벌’ 1호점의 장소를 확정짓고 내부공사를 시작했다. 식당 인테리어 설계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인 작업자들과의 의견충돌이 많았다. 인테리어를 한국식으로 꾸미는데도 문제가 많았고 공기를 맞춰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에서도 벽에 부딪혔다. 공사과정에서 우리측은 밀어붙였지만 중국인들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서로간의 근로문화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더 큰 문제는 식자재였다. 당시 베이징에는 상추, 깻잎, 배추, 된장, 고추장 등 한식에 필요한 식자재가 없었다. 조미료 원부자재는 물론 품질 좋은 소고기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음식의 천국인 중국이었지만 한식에 필요한 재료들은 전무했다. 때문에 초기에는 중국의 재료를 사용해 한식에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당시 식재료 품목은 수입관세가 300%였다. 상추, 깻잎 등 채소는 한국에서 씨를 가져다가 베이징 근교에서 계약재배했다. 방목해서 키우는 중국의 쇠고기는 너무 질겨서 구이용으로 맞지 않았다. 백 회장은 쇠고기 농장을 하나하나 방문해 마블링이 뛰어난 쇠고기를 찾아내 공급계약을 맺었다. 새우젓은 랴오닝(遼寧)성 잉커우(營口)의 어촌에서 조달했다. 결과적으로 구색을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백 회장은 모든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고 한다.
식당은 9월20일에 개업했다. 메뉴는 15가지도 채 안됐다. 개업초기 생소한 한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식당은 파리를 날렸다. 백 회장은 스스로 영업에 나섰다. 중국인들의 주요행사를 찾아가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서툰 중국어로 더듬더듬 말하는 백 회장의 태도는 중국인들에게 신뢰감으로 가가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왔다.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었다. 한식당의 좌석이 부족했고 결국 옆에 있는 상품점 두개를 추가로 임대해 가게를 확장했다.
당시 서라벌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전예약 없이는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으며, 예약없이 찾은 손님들은 한시간이상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북경에서 가장 친절한 음식점이라는 영예로운 소문도 났다. 베이징은 물론 톈진, 상하이 등 다른 호텔 식당들이 서라벌을 벤치마킹하러 찾아왔다.
유명인사들도 서라벌을 앞다퉈 찾았다. 천시퉁(陳希同) 베이징시 서기, 완리(萬里) 전국인민대표 상무위원장, 우이(吳議) 부총리 등이 베이징 최고의 한식당인 서라벌을 찾았다. 이들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나자 중국 공무원들이 밀물처럼 찾아왔다. 청룽, 훙진바오 등 홍콩스타들도 줄을 이었다. 이건희 회장, 정주영 회장, 고 조중훈 회장, 김우중 회장, 고 최종현 회장 같은 재계총수들도 베이징에 들리면 서라벌에서 식사를 했다. 북한 대사관에서도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백금식 회장은 식당개업 이듬해인 1992년 본국으로 과실송금을 했다. 서라벌은 중국에 진출한 대한민국 기업중 최초로 본국에 과실송금을 한 업체로 한국은행에 기록돼 있다. 서라벌은 대형 한식당으로서 중국에 18개 매장까지 확장에 성공한다. 이들 매장은 모두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성공을 거뒀다.
2004년 정년퇴직한 백금식 회장은 재중국한국인회 회장으로 추대돼 2005년과 2006년 2년동안 교민회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백회장은 2008년 한국의 음식점 체인인 자하문과 합작을 해 베이징, 창춘(長春), 칭다오(靑島) 등 세 곳에 대형식당을 냈다. 이 세 곳은 현재 발디딜 틈없이 손님이 몰려드는 지역내 대표적인 한국음식점으로 성장해 있다.
백회장은 “중국인들이 불고기를 상추쌈해먹고, 정성스레 밥을 비벼 비빔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가슴뿌듯함을 느낀다”며 “한국의 음식문화를 중국에 널리 확산시키는 것을 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약력 ▲1949년 3월 경남 합천 ▲1986년 서라벌 입사 ▲1991년 서라벌 베이징 지점장 ▲1995년 서라벌 중국 본부장 ▲2005년~2006 한인회장 ▲2008년 중국 자하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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