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은퇴' 이종범 "이제껏 노력 때문에 버텼다. 생존 방법을 알았다"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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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4-0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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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은퇴' 이종범 "이제껏 노력 때문에 버텼다. 생존 방법을 알았다" (일문일답)

▲이종범 [사진 = KIA타이거즈]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광주 무등구장에 '바람'이 잦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많은 팬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당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은퇴 당사자인 이종범은 온갖 의혹 제기로 혹시 피해볼 주변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하며 은퇴 사실에 대해 담담히 밝혔고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5일 오후 2시 은퇴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은퇴를 알렸다. 지난달 31일 갑작스런 은퇴 선언을 표명한 이후 닷새 만이다.

이종범은 이날 선수 복장이 아닌 양복 정장을 입고 은퇴 회견장에 섰다. 그는 지난날에 대해 회상하며 울며 웃었다. 20여 년을 '스타'로 자리했던 그는 이날 기억에 남는 순간, 아쉬운 기억, 소중한 기록, 향후 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려운 대화를 마쳤다. 가족 이야기에는 참던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음은 이종범과 일문일답. 

▲시범경기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을텐데... 당초 계획은 어땠나?
- 지난 겨울, 준비를 많이 했다. 체중도 81㎏에서 76㎏까지 뺐다. 그래서 너무 아쉽다. 원래는 4, 5월쯤까지 뛰어보고 주전 자리를 받았을 때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구단과 상의해 은퇴를 생각해보려 했다.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 아무것도 모르고 프로에 데뷔한 1993년이다. 정신없이 시즌을 치렀는데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했다. 또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 4강전서 2루타 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일본에서 팔꿈치, 한국에서 얼굴 부상을 당했던 장면도 또한 아쉬웠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없다. 이제 막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이 시간부터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생각해서 결정하겠다. 최근 서울로 집을 이사해 당분간은 광주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아내와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한국 프로야구에 도움이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후배와 팬들에게 그 사랑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

▲야구와 무관한 일도 할 수 있나?
- 1979년 3월, (광주) 서림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했다. 올해가 34년째다. 배운게 그것 뿐이다. 야구에 관련된 일만 생각한다. 사업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많은 선배들의 실패를 옆에서 지켜봤고, 내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지도자상은?
- 그동안 많은 감독님들을 거쳤다. 김응룡, 호시노 센이치,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렬 감독님 등 7분이나 모셨다. 그분들이 어떻게 선수단을 관리하는 지 옆에서 보며 많이 느꼈다. 그분들의 조언도 받았고, 지도자로서 모습을 배웠기 때문에, 모든 장점을 잘 살린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결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선수, 코치, 구단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싶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이 부분이 이뤄진다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다. 꼭 인간미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팬들은 은퇴경기도 기대하고 있는데?
- 이제 내일 모레면 시즌 개막이다, 은퇴 경기도 의미 있지만 경기에 집중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은퇴 경기는 팀이나 상대 팀 입장에서 다소 힘든 점이 있다. 은퇴경기를 치른다면 양 팀 선수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다.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은퇴경기' 보다는 '은퇴식'만 하겠다고 부탁했다. 양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은퇴식에 꼭 와줬으면 하는 분이 있나?
- 막 생각하니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분들, 제게 소중했던 분, 저 때문에 고생했던 분들을 초대하고 싶다. 모두 참석해 줬으면 좋겠다. 그것 또한 지금부터 잘 생각해 보겠다. 야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던 분들을 초대하고 싶다. 아직 구단과 구체적인 말을 주고받지 못했다.

▲뜻깊게 생각하는 기록은?
- 난 홈런 타자가 아니었다. 득점을 요하는 타자였다. 팀이 1점을 뽑기 위해서 반드시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84개의 도루가 가장 애착이 많이 간다. 실패도 있었지만 도루 속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인생도 배웠다. 함부로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들 정후가 그 기록을 꼭 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내가 한국나이로 마흔 셋이다. 이제 시작하는 애들은 스무살이다. 그러나 야구는 똑같다. 열심히 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종이 한 장 차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건 노동일 뿐이다. 목표는 프로 들어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정하는 것이다. 꿈과 목표를 크게 잡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가장 잘하는 선수다. 나도 거만해 진 적도 있고,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이 결국 실패로 이어졌다. 프로라면 은퇴하는 순간까지 노력해야 한다. 이 자리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노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에 만족하지 말고 시즌이 끝날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종범에게 야구는 무엇인가?
- 노력이었다. 야구는 노력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선수보다 작은 체구였다. 체구 좋고 파워 있는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 노력해왔다. 장점을 살려 어떻게 살아남는 지도 알았다. 야구를 통해 사회성을 키우고 인간관계도 만들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야구하던 시기였다. 앞으로도 저는 '야구선수 이종범' 하면 '체구는 작았지만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야구 못했으면 이 자리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들어오는 순간, 헐리우드 스타가 됐던 것 같았다. 야구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눈물을 겨우 참으며) 집사람(정정민 씨), 아들(이정후 군), 딸(이가연 양) 모두 너무 소중했다. 아프고 다치고 슬럼프를 겪었을 때 가족이 없었다면 힘을 낼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게 고마운 사랑을 베풀어줬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하찮은 야구 선수일 수도 있고 평범하게 끝나고 갈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 주시고 마지막 가는 길에 축복해 주셔서 감사한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조만간 운동장에서 찾아뵙겠다. 제게 서운한 감정도 있으시겠지만 나중에 사석에서 소주 한잔 하며 풀고 싶다. 엎드려 절하겠다. 곧 돌아올 수 있도록 잘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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