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모든 급발진 문제는 운전자의 실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판결과 무관하게 도의상 일부 보상해준 경우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결론에는 차이가 없었다. 수년 전, 미국 정부는 미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급발진 문제를 조사했으나 결국 무위에 그쳤다. 재연이 불가능했다. 같은 현상을 재연해야 자동차 결함을 입증할 수 있으나, 급발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연을 못 하더라도 몇 가지 가능한 해결 방법은 있다. 우선 블랙박스. 이미 작년에 50만대 이상 판매된 블랙박스는 올해 약 70만대 이상이 판매될 전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블랙박스 제품은 4개 카메라가 탑재돼 주차 시 감시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이를 이용해 운전자의 발 쪽을 녹화할 수도 있다. 요컨대 블랙박스로 운전자가 문제 발생 시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급발진 문제가 제기될 경우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밝혀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따라서 운전자가 본인이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 필자는 재작년부터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블랙박스 위원회에서 위원장를 맡아 항상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제조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안 그래도 소비자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제조사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등 급발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요소를 억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의 개발 및 탑재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비영리단체 역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홍보나 캠페인 대신 급발진처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기능과 권한 강화 등도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이번에 결성한 합동조사단도 잘못하면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 문제 발생 후 사후약방문식 등장부터 바꿔야 한다. 이번 조사단은 최근 발생한 수십 건의 급발진 문제를 조사한다고 했으나 연간 발생하는 급발진 추정 사례는 적어도 수백 건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보고되는 연간 발생 건수는 100여 건이나 실제로는 수배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어떻게 조사할지부터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순한 급발진 사고에 대한 평가 이상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여론에 떠밀려 등장했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게끔 독립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휴대폰은 끄게 되어 있다. 중환자실에서도 휴대폰 사용은 금지이다. 이미 자동차 안전도 검사 기준에는 전자파 차폐에 대한 기준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전자파에 의한 기기의 오작동 등 위험성을 인지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자동차는 쉽지 않다. 이미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 급발진 해결 방안이 나오길 바란다.
(정리= 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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