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예능이 대세다. 드라마보다 재미있고 때로 다큐, 교양 프로그램보다 감동적이고 유익하다. 음악에 예능의 옷을 입혀 장르를 초월한 실력파 가수들이 진검 승부를 펼치는 ‘나는 가수다’는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비슷한 포맷이지만 아이돌 출신의 가창력 있는 신진 가수들이 이제는 전설로 불러도 좋을 선배 가수, 작곡가가 부르고 만들었던 가요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조 해내는 ‘불후의 명곡’도 음악과 예능이 만난 돋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하나다.
리얼 다큐와 예능을 융합한 ‘무한도전’ ‘1박2일’ ‘남자의 자격’ 그리고 예능 핵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개그 콘서트’ 등은 재미와 감동에 더 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메시지까지 던진다. 드라마의 인기몰이가 여전 한 것 같지만 시청률에만 매달려 말도 안 되는 막장 스토리를 고집하고, 그게 조금 된다 싶으면 그저 엿가락 처럼 늘어나는 드라마에 젊은 세대들은 식상 한지 오래다. 대신 감동과 재미가 더해진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 젊은 층의 대리만족과 불만해소의 분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필자는 가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면서 시청률에만 매달리는 막장 드라마나 진실보도를 외면하는 뉴스가 마치 권력에 집착해 현실을 일그러뜨리는 꼴통 보수라면, 젊은 세대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예능프로그램은 미래를 비치는 순수 진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감동과 재미가 함께 어울리는 사회야 말로 우리 젊은 세대들이 꿈꾸는 미래이며 그것이 곧 정치가 이뤄내야 할 최상의 목표라는 생각에서다.
예능 프로그램의 진화는 젊은 프로듀서와 작가, 그리고 같은 세대의 시청자 들이 서로 오늘의 인생과 현실에 대해 자유롭게 교감하면서 공유한 감성의 창조물이다. 뉴스는 진실을 보도하고 텔레비전 드라마와 예능은 재미와 감동으로 승부하기에 끊임없이 자기 정화와 변신을 꾀해야 한다. 새로운 감동과 재미를 찾아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그래서 '시즌 2'를 준비한다. 시즌 2는 살기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탄생이자 진화이다. 지금 잘 나가는 방송사의 연예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시즌 2를 준비하거나 방영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최근 정치판의 볼 상 사나운 모습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이 시대의 화두인 진보 세력이 뭉쳐 만든 통합 진보당 얘기다. 과거 기성정당에서나 보던 권력 다툼과 폭력사태, 막무가내식의 자기 논리 강변에 누구든 얼굴을 찌푸리다 못해 외면하게 된다. 우파 정당과 보수 언론들은 '애초부터 받아 들이고 싶지 않던 며느리, 이 기회에 내 쫓기로 작심한 시어머니'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좌파-빨갱이'라는 편견의 도식이 진보의 진실한 행보를 어렵게 했는데 우리 모두 타기(唾棄)해 마지않던 기성 정치판의 갈등과 추태를 그들 스스로 재연하다니 참 어처구니없고 통탄스럽다. 이런 판국이라면 정말이지 비판과 매도는 쉬워도 이해와 동의는 받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려라. 그리고 시즌 2를 준비하라. 엊그제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 정태인씨는 "80년대 시작된 운동이 막을 내렸다"며 "진보 시즌2를 시작해야한다"고 호소했다. 면식은 없지만 필자는 정태인씨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실제로 그는 진보 시즌2를 위해 남들이 등 돌리고 있는 통합진보당에 입당했고 많은 젊은 세대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화도 날 것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했는데?'라고 말이다. 그래도 내려라. 그리고 시즌2를 시작하라. 그래야 새 길이 열리고 미래로 갈 수 있다. 그게 진보가 가야 할 진정한 길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한 지난 시간들이 억울하고 분하다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미래로 이끌어 줄 진보의 화두를 이대로 내동댕이쳐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억울하고 분해하는 당사자들에게 전해줄 얘기가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었다가 뒷 날 정부 요직에 몸 담게 된 한 공산당 간부에게서 들은 술회다. '혁명은 내가 남을 베는 것이고 개혁은 내가 나를 베는 것이더라' 말이다. 내가 남을 베는 것보다 내가 나를 베어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고 그것이 참 진보가 갈 길이 아니겠는가? 위기에 처한 이 땅의 진보주의가 '진보 시즌2'를 시작해야 할 이유이자 명분이다.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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