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발목잡힌 韓 경제…짙어진 위기 의식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4일 “유럽 재정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충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하루 만에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은 “이번 위기는 1929년 대공황보다 오래 갈 수 있다. 대공황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였지만 지금은 구조적인 문제”라며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의 위기의식도 한층 짙어졌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5일 박재완 장관 주재로 ‘실물 및 자금시장 점검회의’를 열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다. 그것도 그동안 차관 주재로 열리던 자금시장 점검회의를 장관 주재로 격상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만일의 경우에 미리 대비, 그간 가동했던 상시점검체제를 ‘집중 모니터링체제’로 강화키로 결론 내렸다.
지난 5월 그린북에서는 대외 불안요인에 대해 ‘불확실성이 증가했다’고 진단했지만, 이번에는 ‘확대했다’라는 표현으로 우려 수위를 높인 것이다.
금융시장은 이런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5일 코스피 지수가 등락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1800선에 안착했지만 한동안 롤러코스터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지난달 프랑스 대선 결과 및 그리스 연정구성 실패로 5월 말 현재 국내 증시는 전월 대비 7.0% 하락해 1844pt를 기록한 상태다.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 규모도 4조원으로 확대됐다.
◆국내 실물경제까지 파급…“상저하고 가능성 없다”
유럽 위기는 실물경제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4월 제조업 내수는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고, 수출은 겨우 0.4% 증가했다.
특히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의 수출 동력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상황분석실 부장은 “스페인은 유로존 국가 중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4번째로 경제규모가 크다”며 “스페인이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긴다면, 유로존은 붕괴될 가능성이 짙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결국 유로존은 내수침체를 겪을 것이고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커져 내수시장의 손실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국내 수출 둔화는 시간 문제”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맥락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유럽경제 침체가 국내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보고서는 유럽연합(EU)의 수입이 20% 줄어들면 대유럽 수출은 138억 달러 줄어들고, 30% 축소되면 208억 달러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유럽에 대한 직접적인 수출 외에도 중국 등을 경유하는 수출까지 포괄한 수치다. 특히 조선업이 큰 타격을 볼 것으로 전망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EU에 대한 산업별 수출시장 의존도를 감안할 때 가장 타격을 받는 업종은 조선업”이라며 “조선업의 유럽에 대한 수출 규모는 생산 대비 20%에 육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동차·IT 등도 유럽 수출 비중이 높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유럽에 대한 수출은 557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 5552억 달러 중 약 10%를 차지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잇단 대외악재로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 저조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된다”며 “다만 정부가 (추경 등)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추이를 점검하고 유로존 붕괴 등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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