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닉슨은 자신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힘을 이용해 불법도청, 대국민 거짓말, 매수, 협박 등 반민주주의 범죄 행위를 하다가 결국 하야했다는 게 이 사건을 터뜨렸던 워싱턴포스트의 역사 해석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충분히 후퇴시키는 일이었지만 결국은 법과 국민의 힘으로 퇴치할 수 있었다.
정당을 비롯한 민간인 감시나 사찰은 오로지 국가의 존립에 위해가 되는 테러 등 범죄 행위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지, 정권을 쥔 자가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 허용 범위도 당연히 범의 테두리 안이다. 게다가 국민의 투표로 권력의 핵심에 오른 자는 임기 내에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만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을 넘으려고 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에도 위해가 된다.
얼마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무인 폭격기 드론으로 살해할 테러 리스트 순위 결정권 등 내부원칙을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통해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이 확인해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국민에게 밝힌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테러 작전은 전쟁과 큰 차이가 없는 국가사의 중대한 일이지만 미국 정부는 국민에게 밝혀야 할 것은 밝힌다. 언론이나 국민의 정보 공개 요청에 대해 많은 후진국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국가 안보를 위해서 밝힐 수 없다”다. 선진국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이 이같은 모습을 최근 보였는지 의심스럽다.
몇달전 ‘한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며 떠들썩 했던 국무총리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은 요즘 어떻게 되는지 조용하다. 집권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끝까지 추적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지키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욕을 볼 수 없다. 검찰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검찰은 여전히 권력으로부터 100% 독립되지 않았음을 종종 보여주고 있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는 일이다.
이럴 때 국민과 대표성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사찰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들인 것같다. 권력 운용을 하다보면 정보가 필요하고, 사찰도 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다고 넘어갈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국민의 투표로 한시적으로 대표성과 그에 따른 힘을 가진 행정부는 그같은 정보활동이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군이나 경찰, 국정원 등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설립되어, 국민과 국가의 존립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직이 분명히 별도로 있다.
지금 워싱턴 DC에 접해있는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에서는 181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던 미영전쟁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찌보면 피와 투쟁의 역사다. 1776년 7월4일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문구를 담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지만, 결국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이끌어 냈다.
이미 민주주의 국가가 된 한국이 이같은 전쟁을 또 겪을 일도 겪어서도 안되지만, 여전히 하루 하루 버젓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위정자들의 권력 남용이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했던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오피스 빌딩에서 열린 40주년 기념행사에는 당시 닉슨의 지시로 불법 도청을 자행했단 백악관 보좌관도 참석했다. 이 일로 실형을 살기도 했던 백악관 특별팀의 에질 크로키 전 보좌관은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고 후회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누군가 지적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위정자들이 꼭 있게 마련다. 이를 언론과 국민들이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발전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