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 |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리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갈 때도 있다. 바로 통상정책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반짝인다.
19일 오후 3시 서울 사직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1주년, 한·미 FTA 발효 100일을 앞둔 현 시점에서 한·중 FTA 협상을 위한 전략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 본부장은 “한·중 FTA는 협상 품목 수와 금액의 규모 모두 제한을 두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포괄적 협상을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포괄적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상품,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규범, 더 나아가 환경, 노동이 포함된다.
◆"한·중FTA는 기존과는 다른 전략으로"
한국과 중국 모두 농산물 개방에 대한 보호 장치 마련으로 한·중 FTA가 생각보다 효과가 적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민감품목인 농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커 양국의 전략이 치밀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박 본부장은 “우리 입장에선 최대한 민감 품목을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공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이득이 없을 것으로 본다”며 “이 두가지 충족은 쉽지 않겠지만 민감 품목 보호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권고하는 수준에서 보호를 하고 나머지는 좀 더 적극적 자유화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민감품목을 우리의 주력 공산품으로 묶어버릴 경우다. 즉, 자동차 등이 중국의 민감품목이 될 경우 우리 협상단은 머리가 아파진다.
그래서 정부는 1단계 협상에서 민감품목을 보호한다고 할 때 기존과는 조금 다른 전략을 짜고 있다.
그는 "품목을 몇 개로 한정지을 경우, 석유화학이나 자동차 등을 빼면 우리가 수출할 품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며 "우리의 일반품목에 해당되는 품목들이 고가에 해당되기 때문에 금액 규모에서도 제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협상 자세와 관련 박 본부장은 "민간품목을 보호하는 방식을 잘 짜면 ‘나도 보호하고 너도 보호해라’하는 식이 될 것”이라며 박스속에 무엇을 민감품목으로 넣을 것인지, 갯수나 품목수, 금액 등을 동시에 캡을 씌워 중국과 협의하면 그리 낮은 수준의 체결은 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바로 FTA의 기본인 '윈윈'(win-win)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중국과는 신뢰 쌓는게 우선"
박 본부장은 ‘한·중 FTA를 위한 적절한 인물’이라는 평에 대해 "중국과의 FTA 협상은 전략적 협상보다는 상대 협상자들과 대화하며 관계를 맺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며 직답을 피했다.
그는“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어려운 시기에 협상대표로서도 미국과 굉장히 터프한 협상을 해 왔다”며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변호사들이 협상 테이블에도 나와 있는 등 시장개방을 위한 전략적이며 논리적인, 검투사 스타일의 협상이 맞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그러나 “중국 측은 위에서부터 임명을 받아 일해 온 상무장관들이 협상테이블에 나온다”며 “그런 사람들과는 아주 적극적인 검투사 성격보다는 대화를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0년대 말부터 통상을 연구해온 대학교수 출신의 전문가로서 중국사람들과 몇 번 만나보니, 전략상의 전술보다 솔직히게 대화하는 게 그들과 신뢰를 쌓아간다는 걸 느꼈다는 박 본부장.
이는 박 본부장의 성격이 얼마나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를 중요시하는지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거창한 회의보다는 다과회 같은 소모임을 즐기며 직원들과의 만남을 선호한다. 편한 자리에서의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FTA 실효성, 유통구조 개선과 소비재 수입 증가가 관건
박 본부장은 최근 제기되는 한ㆍEU FTA의 실효성 논란에 대해 “유럽 재정위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아직 효과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오히려 FTA 체결 후 유럽 기업의 국내 직접투자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우리의 FTA 정책, 목표는 수출시장을 선점하고 수출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며 "자원이 없는 나라가 수출을 해야지만 경제발전과 성장이 된다 생각해 모든 FTA를 수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FTA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소비재(消費財)’를 들었다.
한·EU 교역중 수입의 18%가 소비재인 우리나라는 전체 수입 500억달러 중 소비재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규모는 아주 작은 것. 수출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소비자들 역시 소비재에 대한 수입을 체감하지 못하고 또한 절대적 소비재 제품의 규모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문제다.
또 수입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등 수출형 원자재와 부품 등에 대한 수입은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없다.
박 본부장은 또 소비재가 많다 하더라도 유통의 독과점도 소비자들이 FTA효과를 체감할 수 없는 이유라고 들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파는 식의 수입이 아니라 수입을 해서 수입업자가 마진 남기고 도매상에 넘겨서 소매상으로 가고, 백화점 가면서 마진이 붙어, 10~15% 관세를 없애봤자 정작 소비자들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리병 속 협상국'…어쩔수 없는 우리의 한계
한·중 양국은 2차 FTA 협상을 앞두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을 '유리병 속의 협상국'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중국은 베일에 써여 있는 반면 우리는 언론과 국회의원들로 인해 협상중에도 협상전략이 수시로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달 18일이면 통상절차법이 발효돼 발효 전에도 수시로 국회에 보고를 해야한다. 문제는 국회에서 비밀문서 협상문서을 요청하면 보여줘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국에 노출될 여지는 다분하다는 것.
박 본부장은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다. 국가적 전략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자들인 업계, 전문가, 농민들에게 대략의 우리 협상 전략과 입장을 설명해줬다. 소통을 많이 해주면 반대를 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그 속에 무엇이 들어갈 것인지 우리가 내부적으로 협상을 해야 할 부분이니 농수산부나 지경부가 굉장히 비밀스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