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사골 완주마을 비경이 가득한 남원

아주경제 최병일 기자= 전라북도를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풍스럽고 단아한 단청같은 느낌입니다. 모던한 느낌은 덜해도 대신 전통의 향기가 풍깁니다. 남원이 그렇습니다. 어느 시인은 남원을 여행하며 ‘한국적인 이미지가 오롯하게 살아있는 곳’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전라북도는 올해 방문의 해입니다. 맛과 멋이 가득한 곳인데도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숨겨져 있는 여행지가 많은 전라북도의 남원을 다녀왔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스치간 느낌은 있지만 전라북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남원 뱀사골 돌소

◆ 풍성한 이야기 수려한 경치의 조화 뱀사골
여행지 남원은 진수성찬(珍羞盛饌)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수려하기 이를데 없는 자연이 사방을 감싸고, 역사의 숨결이 담긴 풍요로운 문화유산이 있다. 맑은 물이 빚어낸 정갈한 먹을거리와 장인의 혼이 깃든 예술품이 유명하다. 서편제와 더불어‘민족의 소리’로 평가받는 동편제의 고향이 또한 남원이다.

하지만 남원을 빛나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한반도를 감싸안은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다.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을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을 지닌 곳이라고 표현했다. 지리산은 우리 역사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수많은 능선과 계곡 소와 담을 품고 있지만 그중 백미로 치는 곳은 단연 전북 남원의 뱀사골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원시림 속에 유유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 구절양장 같은 계곡에 짙푸른 녹음으로 물들여진 골짜기들은 마치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비단 자연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뱀사골은 품고 있는 이야기 또한 풍성하다. 뱀사골은 이름 그대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1300여년전 송림사라는 절에 해마다 7월 칠석날이면 스님이 신선이 된다며 산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한 고승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주변 사람에게 알아보니 신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뱀사골에 살고 있던 거대한 이무기에게 산채로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고승은 그 해에 제물로 뽑힌 스님의 옷에 독을 묻혀 산으로 올려보냈다. 다음날 선인대에 올라가 보니 이무기가 승려를 삼키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이후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는 뜻의 뱀사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뱀사골 들머리 마을은 뱀에게 잡아 먹혀서 온전하게 신선이 되지 못하고 반만 신선이 되었다 하여 반선(半仙)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뱀사골이어서 그런지 이 지역의 소나 계곡은 뱀과 관련된 명칭이 많다. 이무기가 용이 돼 하늘로 오르다 떨어진 자리가 움푹 파이며 소가 되었다는 탁용소나 뱀이 꿈틀거리는 모양이 뱀소가 그것이다. 계곡을 지나면 다시 소가 이어진다. 바위틈 물길이 병을 닮은 병소, 고승의 영험이 깃들었다는 재승대에 보부상들이 소금을 지고 넘어오다 빠졌다는 간장소까지 하나하나가 다 의미있고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뱀사골은 예전에는 유람꽤나 즐긴다는 선비들도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만큼 계곡이 깊고 험했다. 요즘은 해발 800m까지 차 길이 뚫려 산책로를 걷듯 편하게 다니게 되었지만 50년대만 해도 빨치산이 한번 숨어들면 여간해서 흔적도 찾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천년부터 이어내려온 와온마을은 고아하면서도 정겹다

◆ 천년의 세월 견딘 오지의 비경 와운마을
뱀사골계곡에서 정상인 화개재까지는 대략 9.2㎞. 정상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자연관찰로를 따라 걸어가면 와운골과 뱀사골의 원류가 합수되는 요룡대를 만나게 된다. 요룡대를 따라 와운교를 건너면 하늘 아래 첫동네라고 불리는 와운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가는 구름조차 누워서 간다’는 뜻의 와운마을은 이름처럼 험하고 고적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동네라고 하지만 주민이래야 7가구 19명이 전부다.

와온마을의 이완성 전 이장에 따르면 현재 지리산북부사무소 자리에 송림사가 들어서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단다. 송림사는 남원의 대표 고찰인 실상사보다 100여 년 전 앞서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암자를 네 개나 거느릴 만큼 규모도 컸다. 실상사 창건연대가 828년, 이러니 송림사는 적어도 700년대에 지어진 셈이다. 이렇게 따지면 와운마을 유래는 약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와온마을이 들어오기는 험해도 살기는 참 좋은 곳”이라고 자랑한다. 땅힘도 좋아서 서리가 내리면 아랫 동네 작물들은 죽어도 와온마을 채소들은 푸르름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와온마을 트레킹 모습

뱀사골이 뱀이 많이 출몰하는 곳이라면 와운마을은 호랑이가 많이 출몰했던 곳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불법비디오라고 하지만 전기도 없던 시절 호랑이는 가장 무서운 동물이었다. 집채만한 크기의 짐승이 민가에 나타나 사람을 삼켜버리면 그 자리에 비녀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일제가 호랑이 가죽을 얻겠다는 욕심에 무차별 포획을 하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번에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수탈과 학정이 이어졌다. 일제는 작디작은 마을까지 들어와 무차별적으로 수탈을 했다. 일제가 물러난 뒤 이번에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한판 이념대결을 벌이며 살육전을 벌였다. 수많은 비극이 벌어졌지만 마을의 풍경은 평화롭고 그윽하다. 와운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두 그루의 소나무다. 지리산 천년송인이 소나무는 일명 ‘할머니(할매) 소나무’‘할아버지(한아시)소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나무의 높이만 20m 둘레는 6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이 무려 12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다. 천년의 세월을 담담하게 겪여서 인지 마치 할머니의 허리처럼 이리저리 휘어져 있지만 뿌리는 단단하게 대지를 움켜잡고 있다.
와온마을의 수호신 천년송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들은 이 소나무 밑에서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왔다. 또 마을 부녀자들이 아이를 가지면 이 소나무 아래서 태아에게 솔바람 소리를 듣게 해 일명 ‘솔바람 태교’의 원조가 됐고, 시인 송수권은 이 나무를 보고 ‘솔바람 태교’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바람이 소나무를 스치는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출산 후 또는 장 담글 때 치는 금줄이나 혼례 후 차려지는 혼례상에 소나무 가지를 꽂는 풍습도 있었다고 전한다. 소나무는 1000년의 시간 동안 마을을 굽어보며 주민들과 함께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겨 매년 음력 1월10일 첫 새벽에 당산제를 지낸다. 수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천년송은 당당한 품새가 지리산을 빼닮았다.

와운마을의 숲길은 청향하고 계류소리는 청아하기 이를데 없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을 감추어 놓았는지 우렁우렁거리며 흘러내리는 물은 아마도 숲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와온마을에서 대처인 함양이나 남원 구례로 나가려면 족히 70리길(28㎞)을 걸어야 했다. 다른 것은 자급자족한다 해도 소금을 얻을 길 없는 마을 사람들은 소금을 얻기 위해 능선을 따라 하동장까지 다녀야 했다.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와운마을 사람들의 삶은 궁벽하기만 하다. 찬물에 간장을 섞어 마실 정도는 벗어났지만 80년대까지 남원 목기와 한봉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요즘은 고로쇠 채취와 민박으로 척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와온마을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처럼 살포시 안아주는 지리산을 떠나기에는 이미 산에 너무 길들여 있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 나서려는 지리산이 누군가를 호명하는 듯 하다. 돌아서 계곡을 보니 흐르는 물과 산뿐이다. 그림자 지는 길을 따라 산을 내려오면 지리산이 토닥거리며 정겹게 등을 두드려 주는 것만 같다.

◆ 여행수첩
가는 길 -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IC로 나간다. 인월사거리에서 산내면 방면을 거쳐 반선까지 가면 뱀사골로 들어선다. 와운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맛집- 새집추어탕(063-625-2443) 남원추어탕(063-625-3009) 뱀사골산채식당(063-626-3078) 천왕봉산채식당(063-626-1916) 일출산채식당(063-626-3688), 유성식당(지리산 흑돼지 063-636-3046)

잠잘 곳 - 와운가든(063-626-0661)은 펜션형 룸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 남원자연휴양림(063-636-4000), 구룡관광호텔(063-636-5733)

문의 - 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14, 뱀사골탐방안내소 (063)625-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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