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정은 아이들이 셋이 있었다. 큰 아이는 중학교, 밑에 둘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제대로 대학 교육을 받고 나온 청년들도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가정의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찾다 찾다 실패했다. 간간히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일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40대 가장은 그동안 작은 은행의 지역 매니저를 하며 출장도 잦았다. 그러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두번째 일자리로 건축일까지 했다. 은행업계 화이트 칼러가 왠 건축이냐고 할 수 있지만, 미국인들의 삶은 이런 일들이 다반사다. 주말이면 쉬지 않고 남의 집 부엌, 창문 등 리모델링 및 수리를 했다. 가끔 오고가며 만나는 그의 얼굴에는 피곤이 보였다. 혼자 벌어 다섯 가정이 살려면 연간 10만달러 이상을 버는 일자리가 있거나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게 미국은 보통이다.
미국의 은행들은 왠만한 톱 직위 아니면 임금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한 백인 50대 여성은 20대 초반부터 30년간 미국의 초대형 은행중 한 곳에서 텔러(한국으로 말하면 은행 창구 직원)로 일했지만 최근에야 연봉 4만달러를 번다고 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대형은행 직장이지만 속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얼마전 이사를 간 이 40대 가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가장은 약 3년전 이사를 오며 49만달러에 단독 주택을 샀다. 이번에 켄터키로 이사를 가며 이 집은 43만달러에 팔았다. 3년간 이 가정은 집에서만 6만달러를 손해 본 것이다. 주택을 사고 팔며 들어간 수수료나 중개인 소개료까지 하면 거의 10만달러에 육박한다. 미국의 주택 거래 중개인들은 보통 주택 가격의 5%를 받는다. 43만달러에 팔았으면 적어도 2만달러 이상이 소개료로 나간 것이다.
켄터키는 이 가장의 고향이다. 수도 워싱턴과 비교하면 아주 시골이다. 부모와 형제, 친척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이 가장은 그 곳에서 패밀리 비즈니스를 할 예정이다. 아마도 그가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건축과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높다. 10년 넘게 다녔던 은행도 그만두고 이제 객지에서의 방황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그가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모습에서 현재 미국이 처한 경제 위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얼마전 연준이 발표한 2010년 기준 미국 중산층 가구의 부는 무려 40%나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부의 감소는 주택 가격 하락에서 왔다. 이같은 부의 규모는 지난 1992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동일한 가정으로 비교한다면 1992년과 2010년 18년 동안 벌어놓은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주 발표한 미국의 45~64세 중장년층 실업자는 무려 350만명으로 실업률은 6%를 기록했다. 게다가 실업자중 39%는 1년 이상 실업상태라고 했다. 30대를 전후한 실업자보다 새 직장을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개월이 더 걸렸다.
과거 미국의 중산층은 노년까지 열심히 일해 주택 모기지(융자액)을 갚고 연금을 부면서 부를 축척했다. 노년에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그동안 저축한 부를 쪼개 쓰며 노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같은 삶의 패턴은 이미 붕괴했다. 중산층은 엷어지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부동산, 금 등 현물 가치 폭등과 폭락은 중산층의 부를 하락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의 자산 가격 변동을 잘 이용해서 부를 축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도 꿈같은 말이다. 아이비리그를 나오고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투자가들도 나가떨어지는 세상이다. 시장의 광기는 제아무리 천재적인 시장 예측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운대가 맞지 않으면 돈을 잃게 만든다. 이제 미국 중산층은 투자할 여력도 없다.
켄터키로 떠난 내 이웃 가장은 이미 집을 손해보고 포기했다. 직장도 포기해야 했다. 실업수당은 예전보다 짧게 더 적게 나온다. 미국의 경기 침체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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