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天衣無縫)같은 솜씨로 돌탑을 깎아 원뿔형의 탑을 만드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탑의 벽면에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무희는 마치 금방이라도 벽화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깊은 감동과 사색의 현장에서 기자는 뜻밖의 모습을 보고 아연하고 말았다. 사원의 기둥을 돌아 부조물을 보다 낯익은 한글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남원 김정x’‘김보x’처럼 이름을 적어 넣은 것도 있었고 ‘금연’‘낙서하지 맙시다’같은 글자도 눈에 띄었다. 물론 한국인들만 낙서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각없는 외국인들의 낙서도 보였다. 더 놀라운 것은 돌탑의 중간중간에 ‘디스’ 같은 한국 담배 꽁초를 집어 넣은 행태였다.
장면2. 두 달전 필리핀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납치되었다. 납치범들은 석방조건으로 몸값을 요구했다. 거액의 금품이 오고간 뒤에야 관광객은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납치범은 바로 한국인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한국에서 강도살해 혐의를 받고 도주중에 있던 인물이었다. 관광객의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힘을 써야 하는 곳이 현지 공사관이나 대사관이다. 그러나 현지 대사관에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또한 여행 유의 혹은 위험지역에 대해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것 이상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외국에 나가면 각자의 안전은 스스로가 챙길 수 밖에 없다. 한 여행객은 “외교부는 국민이 국외로 나가면 국민 취급도 안하는 것 같다”고 토로할 정도다.
우리나라 외래관광객이 1000만을 넘어섰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여행을 나가는 해외여행객 숫자도 1200만명을 넘어섰다. 바야흐로 국민 5명의 1명이 해마다 해외를 나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해외에서 보여주는 매너가 성장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일부이긴 하지만 해외 유명문화재를 훼손하거나 낙서하는 행태를 보이거나 우리보다 경제력이 약한 나라 현지인들을 우습게 보는 일도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적극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해주어야 할 현지 공관들의 의식도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는 국내 대형여행사의 행태 또한 별로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초저가 상품이 판을 치고 어떤 여행사나 별반 차별성이 없는 상품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최근 한국관광공사에서 국외여행서비스센터를 개설했다. 해외 여행을 나가는 국민들이 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서비스센터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꼭 필요한 업무라고 판단된다. 일부에서“해외여행업 관련 업체가 할일을 관광공사가 맡아서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국내여행활성화 못지 않게 해외여행객 들에 대한 안전과 계몽이 꼭 필요한 시점이기에 설립의 의문을 제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외여행서비스센터가 해외여행의 질적 성숙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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