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불안감 가시지 않는 미국 고용시장

아주경제 송지영 워싱턴 특파원=다른 사기업보다는 많은 급여를 주지는 않지만, 미국 공무원은 전통적으로 나쁘지 않은 직업이다. 휴가, 의료보험, 연금 등 흔히 말하는 베네핏(benefit)이 좋기 때문이다. 어떤 휴가는 출근 당일 아침에 전화해서 “오늘 못 간다”고 하면 된다. 이유도 묻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는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금기시된다. 그러나 지방이든, 연방이든 모두들 재정이 넉넉치 않아 요즘은 공무원 채용이 대폭 줄었다. 어떤 연방 공무원 자리는 직원 네 명이 나가야 한 명을 새로 뽑는다고 한다.

졸업후 변호사로 대형 로펌(법률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부러움이다. 웬만하면 여기 말로 여섯 자리(six digits, 즉 10만달러) 연봉을 주었고, 지금은 갓 로스쿨 졸업한 변호사에게(젊으면 25세) 15만달러를 주는 기업들도 있다. 물론 몇 년동안 이들은 주 70~80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 노동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5년 이상 지났는데도 파트너(partner)로 불리는 경영자급 리더(leader) 자리를 꿰차지 못하면 나와야 한다. 이제 변호사들의 구직 전쟁이 팍팍하다보니 식스 디짓 로펌이 아니더라도 좋다고 한다. 바로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경기가 좋지 않아 로펌들 중에는 인원을 줄이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변호사 자격증으로 공무원이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전에는 그다지 인기있는 결합은 아니었다. 공무원이나 변호사나 그렇게 ‘익사이팅(exiting)’한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한 미국 사회에서 이들은 지금 한국 말로 ‘신의 직장’을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웬만한 잘못을 하기 전에는 결코 해고당할 일 없는 미국 공무원 사회에 최고의 전문직 자격증인 변호사 타이틀을 지녔으니 당연하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고학력 실업률을 보며 심각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미 교육 당국이 강조를 해왔던 과학전공자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미국에서 스템(STEM: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의 영어 이니셜 약자를 조합한 단어)을 전공하면 전문가로서 좋은 대접을 받고 또 일자리가 많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STEM 박사들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

한 예로 그 인기 좋았던 화학전공자들의 실업률은 40년래 최고인 4.6%로 치솟았다. 서부 아이비리그 학교라 불리는 스탠포드에서 화학 박사를 취득했는데도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고 미국화학협회는 밝혔다. 특히 새로 박사학위를 받는 청장년 세대의 취업률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11년 이들 중 약 38%만이 구직을 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고연봉 전문직으로 인기가 높았던 석유화학·공학 석박사들도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석박사 과정 내내 두뇌 연구를 했고 질병 치료 분야에서 꿈을 이루고 싶었던 한 학생은 지금 대학 행정직으로 취업했다. 몇 년간 원하는 분야 일자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금 미국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6월 실업률은 8.2%로 두 달째 같았다.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업률이 낮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을 막 보낸 학부모들도 자녀가 어떤 길을 갈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다면 마구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는데,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노동시장탓에 썰렁하기만 하다. 이제는 미국의 젊은이들도 그저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좋아하는 일자리를 제 때(졸업과 함께)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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