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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는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장기침체에 빠진 금융투자업계 활로 모색을 위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영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정식 연세대 교수, 조영훈 아주경제 증권부장. |
“자본시장법 개정, 당국 차원 모든 노력 기울일 것”
“업계 스스로도 생존 위한 차별화에 사활을 걸어야”
“美 무역적자 극복은 금융투자산업이 국부창출 덕”
“韓은 거꾸로 제조업서 번 돈 자본시장서 잃어버려”
사회=아주경제 조영훈 증권부장 / 정리=조준영ㆍ양종곤ㆍ박정수 기자 / 사진=이형석 기자
“금융투자업계는 타금융권에 비해 트라우마가 너무 많다. 장사가 될 만하면 규제가 생기는 바람에 걸음마도 떼기 전에 시장이 죽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투자산업 선진화ㆍ대형화는 시장 자체를 키우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아주경제는 기획시리즈 ‘경제혈맥 자본시장 살리자’ 마지막 순서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박영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정식 연세대 교수,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을 초청해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빈사위기에 빠진 금융투자업계에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최대 현안인 자본시장법 개정 문제는 물론 새 먹거리로 떠오를 헤지펀드 활성화 방안이나 규제강화 및 거래과세 논의로 위축되고 있는 파생상품시장 회생 대책, 고령화로 주목받게 될 채권거래 장내화 추진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이 오갔다.
박 부원장보는 이 자리에서 “수렴된 의견 가운데 즉시 바꿀 수 있는 것은 곧바로 반영한 뒤 처리 결과를 금투협을 통해 전체 회원사에 전달할 것”이라며 “시간이 필요한 것 또한 중장기 개선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 개정 더 못 기다려
18대 국회에서 표류하다 결국 폐기돼버린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번 국회에서도 조기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시급하지 않은 사안이라는 인식이 짙다. 앞서 6월 금융위원회가 폐기됐던 정부법안 가운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 가장 먼저 제출했으나 선거를 의식한 각종 법안에 밀려 연내 통과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해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를 비롯한 배타적인 업무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해온 자본시장 선진화ㆍ대형화를 위한, 금융투자업계에 빅뱅을 가져올 첫 관문인 셈이다.
노 연구위원은 “업계가 경영난에 처한 상황에서도 법 개정에 대응하기 위해 수조원에 이르는 자본을 추가로 쌓았다”며 “주무당국인 금융위나 금감원이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 부원장보는 “국회에서도 의원 하나하나 개별적으로는 자본시장법 개정 중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국 차원에서 법 통과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업계 요구나 당국 의지에도 여야간 정치적인 이해가 엇갈리면서 연내 법안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김 교수는 “(자본시장법 통과 첫 관문인) 국회 정무위원회를 보면 새누리당이 11명, 민주통합당은 10명으로 18대 국회에 비해 야당 영향력이 세졌다”며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워낙 강한 상황이라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선거 이후까지는 적극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업계가 불어난 금융투자산업 수요에 상응하는 경쟁력을 못 갖추고 있는 점이 문제”라며 “미국은 무역적자를 금융투자산업을 통한 국부창출로 만회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제조업으로 번 돈을 자본시장에서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지펀드 빗장은 열렸지만
금융위가 앞서 7월 헤지펀드시장 진입장벽을 수탁액 10조원 이상에서 1조원 이상으로 낮췄으나 업계는 추가적인 규제 완화나 시황 개선 없이는 활성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개인투자한도부터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는데 시장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현행 5억원인 개인투자한도가 3억원 미만으로는 떨어져야 헤지펀드에 관심을 가진 10억원 내외 금융자산가를 시장에 참여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시황 회복 또한 관건이다. 헤지펀드 기대수익률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박 부원장보는 “2011년 말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한 지 7개월 만에 더 많은 플레이어(회사)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다”며 “아직까지는 회사별 트랙 레코드(실적)를 측정하는 과정으로 봐주면 좋겠고, 시장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추가적인 규제완화 조치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알고 있으나 지금껏 없던 제도를 갓 도입한 초기 단계인 만큼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는 것이다.
박 부원장보는 “보다 많은 플레이어가 시장에 들어와 서서히 저변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시장이 바라는 조치를 국제 헤지펀드 동향에 맞춰 단계적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스스로도 생존을 위한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 또한 내놨다. 박 부원장보는 “62개 증권사, 82개 운용사, 155개 자문사가 존재하는 금융투자산업 속석상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며 “자본시장법 통과로 다양한 먹거리를 얻게 될 대형사뿐 아니라 중소형사도 대형사를 쫓는 축소판식 판박이 영업에서 벗어나 차별화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에 멍든 파생상품시장
세계 최대 수준에 달했던 파생상품시장이 규제강화 및 거래과세 논의로 멍들면서 시장참여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3년 후부터 파생상품 거래시 세율 0.001%를 적용해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타금융상품 대비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다.
증시에서 현물 거래대금 가운데 40% 이상이 파생상품 거래와 연관돼 있다.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된다면 현물시장도 파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거래세를 도입했던 대만마저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원장보는 “국내 시장체력을 감안할 때 파생상품 거래가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은 과도한 면이 있었다”며 “정치권도 조세 형평성뿐 아니라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과세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김 교수는 “(제임스 토빈 미국 예일대 교수는) 금융거래세인 토빈세(금융거래세) 역할에 대해 톱니바퀴에 모래를 약간 뿌려 천천히 돌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며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이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제 신설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금융산업은 실패시 위험 전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라며 “이점이 규제가 필요한 이유겠지만 파생상품 거래는 다른 자본시장 거래를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리스크 완화를 위해 거래세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연구윈원은 “자본시장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할 때 더욱 키워 산업 전반에 더 많은 돈이 흐르도록 하는 게 유리할 할 것”이라며 “시장이 아직 성장하지 않은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세수 또한 기업에 자금을 대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가개선 채권거래 활성화 관건
‘제로(0) 금리’ 시대가 임박한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장내채권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당국이나 업계 모두 이견이 없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거래 규모가 큰 채권을 어떻게 손쉽게 거래시킬 수 있느냐다. 채권 거래대금을 보면 장내에서 하루 평균 1조원 안팎인 데 비해 장외에서는 여전히 20조원을 넘나들고 있다.
채권은 발행회차별로 금리책정이 다른 만큼 한 번에 유통시키기 어려운 데다 기관이 만기보유 성향이 강한 점 또한 원활한 거래를 막는 원인이다. 거래소가 장내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 오는 2014년까지 신시장시스템 ‘엑스추어 플러스’를 내놓을 계획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노 연구위원은 “장내채권거래는 증권사에 새 수익원이 될 수 있는 분야”라며 “상대적으로 큰 거래단위 탓에 거래소 시장에서 호가 제시가 어려운 점을 해소, 개인도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통화 확대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채권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장기물 수요가 커져야 한다”며 “복지 확대로 남미와 유사한 경제체제로 바뀌면서 돈을 지속적으로 찍어내는 바람에 화폐가치가 하락, 장기채 발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원장보는 “당국도 장내채권거래 활성화 필요성을 인식,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며 “유로존이 재정위기를 초래해 세계 경기둔화를 불렀으나 채권 트레이딩 시스템 만큼은 선진화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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