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은 성의있게 상담에 응했지만 김씨는 어떤 대출상품을 선택할 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대출기준과 한도, 상환방식 등이 너무 복잡했던 탓이다. 결국 소득 없이 시청을 나선 김씨는 인근 은행 영업점을 찾아 직원이 추천한 새희망홀씨 대출을 받기로 했다.
오랜 불황으로 각종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정부가 서민금융 지원에 힘을 쏟고 있지만 지원 주체와 상품 종류가 너무 많아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한편 광범위한 서민금융 지원제도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서민금융 지원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민간 금융기관은 물론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저신용·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생계자금으로는 새희망홀씨(은행), 햇살론(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 근로자 생활자금대출(근로복지공단)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자금의 경우 미소금융(각 미소금융 재단), 소상공인 창업·경영개선자금(소상공인 지원센터), 희망드림론(새마을금고) 등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밖에도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바꿔드림론(자산관리공사·은행)과 금융소외계층에 생계비를 빌려주는 소액금융 지원(신용회복위원회) 등 대략 20여개의 대출상품이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다.
이들 상품은 대출대상과 한도, 금리, 대출기간, 상환방식 등이 천차만별로 구성돼 있어 소비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최대 2000만원 한도로 대출을 해주는 새희망홀씨와 햇살론은 대출대상이 각각 연소득 3000만원 이하(신용등급 5~10등급)와 연소득 4000만원 이하(신용등급 6~10등급)으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특히 햇살론은 상호금융에서 대출을 받을 때와 저축은행을 이용할 때 적용되는 금리가 다르다. 신복위의 소액금융 지원과 자산관리공사의 소액신용대출은 대출대상과 한도, 금리 등이 유사해 사실상 중복 지원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처럼 대출상품 선택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결국 지점 수가 많거나 인지도가 높은 기관으로 소비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공동으로 판매하는 새희망홀씨 대출은 올 상반기 취급 실적이 8836억원에 달하고 누적 잔액은 2조2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반해 전국적으로 지점이 10개 미만에 불과한 공공기관의 비슷한 상품은 실적이 불과 수십억원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서민금융 지원제도가 난립하고 있지만 이를 통제할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도 문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원래 서민금융은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부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도 상품을 내놓으라고 압박만 할 뿐 지원제도를 연계하거나 중복 지원이 이뤄지지 않도록 제어하는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원제도가 다양한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서민들의 자금 수요와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며 “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지원제도 간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서민금융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