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남궁진웅 기자. |
아주경제 김현철 기자=지난 2007년 한나라당 시절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올해 만 60세인 박 후보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속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5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대권 재수에 나섰다.
그가 이번 도전에 성공할 경우 건국 이후 첫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父女)가 모두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다.
박 후보는 1952년 2월 군인인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박정희가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 2년 뒤인 1963년 대한민국 제 5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1974년 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그해 8월15일 어머니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급거 귀국해 1979년 10ㆍ26 사태로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 5년여간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맡는다.
18년간 지냈던 청와대를 1980년 떠난 박 후보는 성북동 자택 등에서 무려 18년간 칩거에 들어간다. 이 기간에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거나 서적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육영재단 이사장직과 영남대학교 이사장 등을 맡기도 했다.
박 후보는 18년간의 칩거를 마치고 46세인 지난 1998년 4월,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권에 입성했다.
이어 2000년에는 총재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2위로 부총재로 당선됐으며 2001년 상향식 공천, 당권ㆍ대권 분리 등을 골자로 한 '7대 당 개혁안'이 거부 당하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복당한 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등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이에 힘 입어 이어진 4ㆍ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2년3개월간 당 대표를 지내면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이끌어 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첫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으로 정국을 달구는 등 이명박 정부와 견제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과 달리 당시 박 후보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했고, '신뢰'를 근간으로 내세운 박 후보는 판정승을 거뒀다. 이후 다시 당을 장악한다.
박 후보는 2011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2012년 4ㆍ11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152석을 차지하며 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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