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기자= 무슨그림일까?.
장판지같은 색에 숫자와 문자. 박음질이 뒤섞인 면들이 거대한 바위같은 형태를 이뤘다. 그 사이사이엔 각진 검정색들이 보란듯이 박혀있다.
쉽게 해독되지 않는 추상회화. 이 작품은 더욱 난해하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듣는 순간, "아하~" 딱딱하고 각진 그 산이 보이는 듯하다. 아니 그 산이 겹쳐진다.
흑과백 '오딧세이' 연작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차우희(67)의 작품이다. 오는 30일부터 서울 이태원 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신작엔 겸재 정선때문에 유명해진 '인왕산'이 담겼다. 그러니까 보기에 난해한 작품은 '21세기 현대판 '인왕제색도'인셈이다.
"세잔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이제야 조선시대 진경 산수화가 겸재가 세잔을 뛰어넘는 거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며 예찬했다. 이번 전시 타이틀도 '오마주 정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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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희 화백이 이태원 표갤러리에서 자신의 신작 '오마주 정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
21일 표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작품처럼 독특했다. 검정라인으로 두껍게 칠한 눈,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스타일'이다. 덕분에 일흔이 코앞이지만 할머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강해보이려고 눈화장을 진하게 했다"는 작가는 "왜? 이상하냐"고 오히려 몰아세웠다. "전혀 불편하지도 않고 피해를 주지않는다며 이상하게 생각하는건 의식의 문제"라고 했다. 심지어 거꾸로 입은 티셔츠도 "목덜미가 시원하다"며 "이게 더 편하다"고 했다.
작품의 구분이 모호한 것처럼 작가 자신도 '경계없음'이 분명했다. '~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깬지 오래된듯 했다.
하지만 작품을 위해선 변치않는 '이기심'이 강하다. 작가는 38년전 가족을 두고 독일로 떠났다. 30년이 넘게 유럽을 떠돌며 전시하고 작업에만 열중했다.
"아들이 중학교때였어요. DAAD 베를린 예술가 프로그램에 초청됐는데, 백남준 선생도 작업을 하라고 했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가라고 하더군요."
남편은 국내 미술평론계의 대부 오광수(전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씨다. 작가는 "당시 남편은 아마 3일을 못버티고 한국으로 다시 올거라고 생각했었다"며 "유럽에서 활동하며 찾은건 자신감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유럽행을 택한건 남편때문이기도 했다. 나름 작가로서 활발하게 작업했지만 날로 유명해지는 남편기에 눌렸다. '남편 테두리'를 벗어나 유럽에선 오롯이 화가 '차우희'로서 살았다. 독일화단에선 '별종'이라고 부를만큼 독일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았다. 노펠퍼 갤러리, 헤어레스 베카라리등 세계 유수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고 한국화가가 아닌 '세계적인 화가'가 됐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작가는 3년전 다리가 아파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정선이 살았던 서촌에서 지낸다는 작가는 옥상에 텃밭을 가꾸며 무심코 바라보던 '산'에서 겸재 정선이 담아낸 인왕산의 위대함을 발견했다고 했다.
인왕은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리기전까지는 단순한 서울 서쪽을 지키는 산에 불과했다.
작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듯이 겸재가 그림으로써 비로서 인왕산은 관념에서 현실로의 산, 실존으로서의 산이 되었다"며 "겸재때문에 새롭게 발견한 인왕산이 유럽의 떠돌다 한국에 정착한 내 작업의 새로운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가까이 있었기에 너무 무관심했던 '인왕산'은 겸재에 의해 21세기 서양화가 차우희의 의해 또다시 색다른 의미로 현대인에 각인되고 있다.
"상추 배추 토마토 루콜라등을 기르며 고추를 따다가 가지를 따다가 문득 구부렸던 허리를 펴면 인왕과 북악이 빙긋이 웃더군요. 이 복잡한 서울 중심에 그러한 산이 있다는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동안 오디세이-배연작이 '시간'을 풀어냈다면 이번 전시‘오마주 정선’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정선의 '쇄찰준'기법을 적용했다. 여러 겹의 천을 바느질해 덧댄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을 빗질하듯 얇게 덧바르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숫자나 수학 기호, 알파벳은 신작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런 기호들은 작가가 일상 속에서 만난 특정 인물이나 장소, 시간 등을 의미하는 상징 언어다. 작품 사이사이에 보이는 검정색(띠)들은 '흐르는 물'이다.전시는 9월 28일까지. (02)543-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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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갤러리 차우희 개인전에는 직접 두드려만든 나무가지 형상의 거대한 조각품 1점도 전시됐다./사진=박현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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