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사찰음식전문점 산촌을 운영하는 정산스님이 유와 무 공과색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화가 김연식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아버지때문이었다. 열다섯살짜리 소년은 "이런 아버지 밑에 있으면 더 나빠질것 같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세 명의 어머니가 속병을 앓는 것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 "좋은 아버지가 돼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훌쩍 집을 나왔다.
어릴적부터 가출을 위해 용돈을 모아온 그는 제주도 가는 배에 올라탔다. '천경자' 때문이기도했다. 어릴적 피아노를 배울정도로 여수에서 내노라하는 부잣집에 살던 그는 서가에 꽂혀있는 테스 보봐리의 부인등 명화를 읽을 정도로 조숙했고 천경자화백의 수필 '유성이 흘러가면'을 읽으며 제주도 정방사를 머릿속에 그렸다. 무조건 정방사에 도착해서 바라본 풍경은 천화백이 쓴 글속풍경이 그대로 있었다. 여수에서 멀리 제주도까지 간 이유는 집에서 찾을까봐였다. 이후 부산 범어사로 들어가 출가한 그는 51년째 승복을 입은 스님으로 살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30여년째 산촌을 운영하며 사찰음식연구가로 유명한 정산(靜山) 스님이다. 뉴욕타임즈에 '한국의 우수 레스토랑'으로 소개될정도로 세계적인 음식점으로 성장한 '산촌'은 해외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사찰음식가로 널리 알려진 스님은 이제 속명 '김연식'을 화가로 세상에 드러내 또한번 주목받고 있다. 붓대신 알록달록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변신했다.
"전국 사찰을 돌며 사찰음식을 연구하다 자연스럽게 사찰주변의 자연 풍광을 가까이 하게되었고 거기서 창작의 영감을 얻어 미술작품 활동을 시작하게됐습니다."
정산스님 김연식작가가 도루코의 지원으로 면도날 7만개를 꽂아 완성한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 |
정산스님 김연식작가가 도루코의 지원으로 면도날 7만개를 꽂아 완성한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 |
지난 200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해마다 4-5차례 전시를 열어온 그가 이번엔 면도칼을 이용한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전시를 펼쳐 화제다.
오는 12일부터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여는 제 6회 개인전에는 '도루코'와 콜라보레이션한 면도날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며 꿈속을 헤매듯 완성한 작품은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란 제목을 붙였다.
'섬뜩한 칼날' 4만개가 꽂혀 있는 작품이다. 3㎝ 간격으로 빼곡히 채운 작품운 세로 2.4m, 가로 11m가 넘는 거대한 작품으로 전시장을 압도한다. 각각의 면도날은 매니큐어와 인조보석 등으로 치장됐다.
일일이 손으로 꽂으며 칼날에 손이 베이기도 했지만 "'면도날 꽂기'는 깨달음을 위한 하나의 수행과정일 뿐이었다"고 했다.
말러의 음악과 면도칼. 웬지 부조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산스님은 "말러의 9번 교향곡을 해석하는데 면도날이 적합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칼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죽음의 칼, 요리사가 들면 맛있는 칼이 되며 여인의 가슴 속에 담기면 순결 정조의 칼이 되지 않겠어요?”
부정적인면만 인식된 칼이지만 "면도날은 결코 죽음의 칼이 아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말로의 음악이 염세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음률이 장엄하고 희망어린 메시지로도 들릴수 있는것과 같을 겁니다. 면도날은 결코 죽음의 칼이 아닙니다. 남성의 구렛나루와 여성의 아름다운 눈썹을 부드럽게 다듬기도 하고, 아름다움의 경계를 긋는 상징성을 지녔죠. 불교적인 면에서 이미 죽음은 또다른 시작으로 해석하며 열반을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선 초월한 세계로 드는 것입니다."
3㎝ 간격으로 공중에 매달린 1400가닥의 지름 1.5m의 구체(球體)를 형성한 작품도 볼거리다. 면도날 3만여개를 매달았다. 말러의 2번 교향곡 ‘부활’을 재해석했다.
이번전시에는 면도날작품이외에도 정산스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성냥갑'을 활용한 대형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이 작품역시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가로 8-9m 가로2m70cm 크기 화면에 성냥갑 2만5천개를 세워 표현했다.
'매니큐어'와 '성냥갑'작품으로 무無와 유有 공空과 색色을 표현하며 주목받은 작가는 그동안 프랑스 샤랑통시 초청 살롱전 특별초대전, 샌프라시스코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지며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하반기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는 24일까지. 말러의 음악이 전시기간내내 함께한다. (02)736-1020
정산(靜山) 김연식 스님은 지난 2월 서울대병원 발전후원회(회장 강신호)에 성냥갑으로 만든 '드뷔시의 달빛(가로 990cm x 세로 270cm)' 작품을 기증한바 있고,최근 서울대병원은 "이 작품이 환자들의 반응이 좋다"며 "어린이동에도 설치할 그림을 주문"했다. 정산 스님은 '봄의소리 왈츠'를 테마로 작업해 또다시 기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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