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전문가증인 전성시대

  •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애플과 삼성 간의 특허소송은 변호사들 간의 법정 공방만 있는 게 아니다. 양측이 동원하는 전문가증인(expert witness)들 간의 치열한 다툼이기도 하다. 애플·삼성 소송에서 누가 누구의 특허를 침해했는지뿐만 아니라 특허 침해로 입은 피해액이 얼마인지에 관하여도 전문가증인들의 증언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전문가증인은 상당한 보수를 지급받는다. 애플측 전문가증인으로 나서 삼성이 카피캣(모방자)이라는 애플의 주장을 확인해주었던 피터 브레슬러는 소송의 전문가증인이 되는 데 얼마를 받았느냐는 삼성측 변호사의 질문에 그때까지 미화 7만5000 달러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로 약 9000만원 정도가 되지만 아마도 4주 재판 기간 중 이 액수는 몇 배 이상 올라갔을 것이다. 전문가증인을 확보하고 그 증언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력도 대단해서 호주에서는 연방법원이 지정한 전문가들에게 애플이 부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삼성측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특허·독과점·증권·금융·의료 등 전문적인 분야의 소송이 증가하면서 전문가들이 소송에 적극 참여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키코 소송에서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엥글 교수가 중소기업측 증인으로 나서고, 스티븐 로스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가 은행측 증인으로 나서는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전문가증인으로 나서 주목받기도 했다. 사실 사건의 폭주로 인해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들 입장에서 볼 때 전문가의 증언 또는 감정 결과는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재판부도 전문가들을 가급적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정한 전문분야의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크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문가를 활용하는 데 돈과 인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재판은 결국 '가진 자'에게 유리한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재판업무에 종사하면서 전문가라고 해서 일반인보다 특별히 신뢰할 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경험했다. 왜 그럴까. 첫째, 전문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실 때문에 소송에 이해관계를 가진 경우가 많다. 직접 소송당사자와 자문관계를 맺고 있지 않더라도 학회, 학교 등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이해관계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로 인해서 왜곡된 증언이나 감정을 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전문가는 주로 엘리트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모범생일수록 의외로 진실을 위해서 저항하는 것에는 약하다. 따라서 증인이든 감정인이든 진실에 봉사하기보다는 자신을 추천한 측의 이익에 봉사하기 쉽다. 셋째, 전문가들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종종 사실과 의견을 한데 묶어 사실로 주장하거나 일면의 진실만으로 전체인 양 왜곡하는 등 거짓말에도 능하다. 또한 늘 자기 확신을 주입해 성공을 추구해 왔으므로 잘못된 사실도 스스로 합리화하는 데 능한 경향이 있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말이다. 영국의 시인 앨프레드 로드 테니슨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사악한 거짓말은 절반쯤 진실인 거짓말이다(A lie that is half-truth is the darkest of all lies)." 전문적인 소송일수록 판사가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을 바탕으로 늘 '전문가의 거짓'을 검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사가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이해관계에 얽힌 '전문가에 의한 재판'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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