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건양 농진청 연구정책국장 |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56년만의 대가뭄으로 29개주 1300개 지역을 가뭄지역으로 선포했으며, 곡물 수확량도 최대 8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밀과 콩의 주산지인 우크라이나와 브라질에서도 가뭄으로 밀과 콩의 수확량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곡물 수확량이 급감하면 반대급부로 곡물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유발하게 되는데, 전 세계 옥수수의 38%를 생산하는 미국에서는 가뭄으로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옥수수 가격이 두 달 만에 31%나 상승했다.
우크라이나와 브라질에서도 밀과 콩의 가격이 32%, 22% 각각 상승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격 상승은 아이티와 소말리아 폭동이 일어났던 2008년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하니 현재의 가뭄은 가히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가뭄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태조부터 순종까지 510여년 동안 가뭄에 대한 기록이 300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해를 거듭한 가뭄도 있었고 심지어는 6년이나 지속된 적도 있다고 한다.
문종실록에 보면 중추원사 이징석이 고하기를 “민간에 벼가 있는데 50일이면 익는 까닭에 이름을 오십일도(五十日稻)라고 합니다. 바야흐로 그 파종한 시기에 비록 가뭄을 만나 미처 심지를 못하였다 하더라도 만약 5월에 이르러 비만 온다면 그래도 경작하여 수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청하건대, 민간에 널리 알려서 경작하기를 권하소서.” 하였다고 한다.
정조실록에는 “연해 지방 고을에는 이른바 고구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구마는 명나라의 서광계가 편찬한 농정전서에 처음 보이는데 칭찬을 하여 말하기를 ‘그것을 조금 심어도 수확이 많고, 가뭄이나 황충(메뚜기)에도 재해를 입지 않고, 달고 맛있기가 오곡과 같으며 힘을 들이는 만큼 보람이 있으므로 풍년이든 흉년이든 간에 이롭다’고 하였습니다”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먹을거리의 해결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존립과 생존의 문제다. 우리 선조들도 가뭄에 대응하여 짧은 기간에 수확할 수 있는 품종과 구황작물 보급에도 힘을 쏟았으며, 농사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대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자체 품종을 개발하여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일본에서 귀국한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배추 품종 ‘원예 1호’, ‘70년대 식량자급을 해소한 통일벼 품종이 국내 연구진의 결과로 탄생한 품종이다. 지난 50여년간 우리의 농업기술력은 세계 5위 수준으로 발돋움 했고, 현재까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품종은 3000여종에 이른다. 전국 어디서나 지역에 알맞은 품종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최근 가뭄, 폭염 및 고온 등 이상기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후변화 영향으로 일상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국제곡물가 폭등이 일상화 될 것이라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콩·밀 생산 확대 및 수요기반 강화, 밀·콩·옥수수까지 공공비축 확대 및 수입곡물가 안정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뭄이나 고온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개발과 품종개발의 기본소재가 되는 다양한 유전자원 확보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벼, 콩, 밀 품종개발에는 최소 10년이 소요된다. 국가차원에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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