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침체 등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시중은행들이 마땅히 '돈 풀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웅진 사태를 계기로 '부실기업 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최고 우량고객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영업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은행 기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실적 악화에 대한 은행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 영업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보단 직접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월 중 회사채 발행 규모는 11조6930억원으로 전월 대비 9852억원(9.2%) 늘었다.
특이한 사항은 일반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은 모두 대기업이 차지했고, 중소기업의 발행 실적은 전무한 실정이다.
8월에는 회사채 발행 규모가 9조1454억원으로 전월보다 2조5476억원(21.8%) 감소했지만, 이달에도 일반 회사채 중 대기업의 발행 실적이 무려 99.8%를 차지했다.
한 은행의 대기업 영업담당 임원은 "기준금리 인하로 채권금리에 매력을 느낀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은행의 대출금을 상환할 정도"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줄겠지만, 신규 대출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에 무턱대고 대출을 해줄 수도 없는 처지다. 이 임원은 "대기업이지만 부실 우려가 있는 곳에 대출을 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웅진 사태로 부실 대기업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기업들이 은행들로부터 받은 대출 금리는 4%를 넘는다. 그러나 최근 우량 회사채의 발행금리는 3% 수준이다.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해 은행 대출금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
보통 3년물 또는 5년물로 회사채를 발행하면 일반대출 기간에 비해 만기가 길어 차입구조를 안정화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최근 서민금융 강화로 저금리 대출상품 출시 압박을 받고 있는데 정작 우량 고객은 놓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은행 입장에선 우량 대기업 대출이 원활히 이뤄져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리스크 부담도 덜 수 있을텐데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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