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제가 고국에 돌아온 이유는 KAIST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만들어 고국의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단 하나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현 정부에서 연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6년간 우리 KAIST는 국민 여러분들의 절대적인 관심,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를 아낌없이 성원하고 함께 노력해 주신 교직원, 학생 등 학교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저는 평소 KAIST의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제 거취에 대한 뜻을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약속드린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숱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오늘까지 참아온 것은, KAIST 발전을 위해 가장 적절한 퇴임시기를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7월 16일 기자회견 이후, 3개월 동안 학교는 좋은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의 노력에 힘입어 우수한 연구 성과가 창출되고 이 같은 성과들이 세계적인 학술지에 연이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대학평가 기관인 ‘QS’와 ‘더 타임즈(THES)’가 발표한 2012년 KAIST의 세계대학 순위가 1971년 개교된 이래 최고의 성적인 63위와 68위를 차지했습니다. QS의 경우 2006년 198위보다 무려 135단계나 상승한 것이며, 특히 KAIST의 핵심역량인 과학기술 및 공학 분야의 경우 전 세계 대학 중에서 2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한동안 주춤했던 고액 기부금도 최근부터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께서 55억원 규모의 동산을 발전기금으로 쾌척한데 이어,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님께서 고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달라며 80억원대의 재산을 기탁하시는 등 9월 한달에만 135억원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2012년 기초과학연구원이 선정한 연구단장 17명 중 4명이 KAIST 교수님들이며 지난 2007년에 이어 올해 또 한분의 교수님께서 국가과학자로 선정이 돼 10명의 국가과학자 중 2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KAIST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글로벌 Top 10’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도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대학 하나쯤은 갖고 싶어 하시는 국민여러분의 염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동안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여러분의 꿈을 이뤄드리진 못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이제 KAIST가 저, 서남표를 뛰어넘는 글로벌 경쟁력과 비전, 리더십을 겸비하신 새로운 총장과 함께 글로벌 Top 10 대학으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학교의 정관에 따라 저에게 부여된 임기는 2014년 7월까지 입니다만, 내년 3월 정기이사회를 끝으로 저의 임기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내년 1월 중에 KAIST 정관 제17조의 3(총장후보선임위원회)에 의거하여, 이사회에 후임총장 선임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이사회를 열어달라고 공식 요청을 드릴 계획입니다.
(KAIST 정관 제17조의 3, 제4항-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총장 임기만료 2개월 전에 구성하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총장승인을 받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이사장께서는 10월 25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후임총장 선임을 논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오명 이사장은 이사회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오로지 저의 사임만을 강요하여 왔습니다.
지난 7월 20일 이사회 직전에도 저의 자진사임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6년간의 개혁성과를 적극 지지하고, 교수사회를 적극적으로 개혁하며, 글로벌 역량을 가진 후임총장을 공동인선함은 물론, 퇴임에 관한 총장의 자율적인 결정을 존중한다’고 제안 하면서 이사회를 책임지고 설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오 이사장은 합의내용을 전혀 이행하지 않으면서, 오직 저의자진사임만을 끌어내고,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하여 현 정부 임기 중에 후임총장을 시급히 선임하려는 의도는 KAIST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제 경험으로 보았을 때 후임총장은 차기정부와 효율적으로 협력하실 수 있는 분이 선임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여러분께 약속드린 대로 이사회와 함께 내년 1월부터 KAIST를 세계 초일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글로벌 수준의 탁월한 능력, 비전과 리더십을 겸비하신 분을 후임총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남은 5개월 동안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국제적 프로젝트들을 잘 마무리하고, 그동안 이룩한 토대와 자산을 바탕으로 후임총장께서 학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러 개혁정책이 뿌리를 내리는데 힘을 쓰겠습니다.
현재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와 공동으로 KAIST내에 설립을 추진 중인 ‘이산화탄소 연구센터’, 그리고 미국 앤드류 영 재단 등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모바일 하버 프로젝트의 북미진출 등 글로벌 사업 추진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이와 함께 융합연구의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된 KAIST 연구원(KAIST Institute)에 국내 최초로 도입한 Matrix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KAIST의 시스템과 인프라, 교직원들과 학생 등의 인적구성, 연구수준, 재정안정성 등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KAIST는 앞으로도 이미 세계적 반열에 진입한 공학과 IT, 자연과학분야를 기반으로 활발한 융합연구를 통해 한층 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제가 총장이 된 2006년 7월 이후 지난 6년간은 KAIST가 여러 제도를 새롭게 조정하고, 또 변화를 추구해왔던 시기였습니다.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계적인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들과 견주어서 볼 때, 이 같은 제도의 변화를 담아낼 새로운 대학문화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KAIST가 ‘글로벌 TOP 10’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걸림돌이자 그동안 그릇된 선례로 남아있던 일부 학내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중단 없는 KAIST 개혁의 추진과 완성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첫째, 카이스트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KAIST는 국가가 만든 특별법에 따라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이자 국가과학 기술의 요람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정치권, 과학기술계 등 특정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KAIST가 사유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KAIST는 이름이 말해주듯, 미래를 여는 일에 늘 앞장서야 하는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학교행정에, 그리고 제도와 연구에 일일이 간섭하면 KAIST 발전을 해치는데 크던 작던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매우 창조적인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처음 얼마동안은 부정적인 면도 없진 않겠지만, 정부가 조정하고 관료들의 영향력을 받아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세계적인 대학이 나올 수 있고 또 노벨상 수상자도 조기에 배출될 것입니다.
최근 국내외 저명한 대학평가기관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부 국내 사립대학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들을 정부관계자들은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KAIST 구성원들 또한 그동안의 일부 굴절된 관행과 문화에서 벗어나 사회 보편적 준칙에 따라 책임지고, 또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존중하고 공감하는 선진적인 대학문화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특정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상대를 음해하고 모략하는 등의 낡은 인습은 이제 세계적인 대학을 지향하는 KAIST에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KAIST가 진정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되려면, 인프라, 인적자원, 재정 등 하드파워도 중요하지만, 먼저 상대를 배려하며 격려하고 인정하는 선진적인 새로운 문화 즉, 소프트파워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KAIST가 현재보다 더 나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KAIST 이사회를 우리가 궁극적으로 경쟁해야 할 하버드, MIT 등 미국의 명문대학과 유사한 수준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로 개편해야 합니다.
즉, 해외 유명대학 총장이나 글로벌 기업의 CEO, 전문가 등 국제적 식견과 비전을 갖춘 인사를 이사로 영입해서 그들의 경륜과 노하우를 KAIST 경영에 반영하고 접목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의 특성을 감안해서 동문출신 이사는 물론 국내 각계각층의 인사를 영입함으로써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사 수의 확충에 따른 잠재적인 기부자가 증가함으로써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 수가 많아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다면 기존 이사회의 주요의사 결정 기능을 적정 수의 이사가 참여하는 경영위원회에 부여하고 기타 다양한 상임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명 이사장은 KAIST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이사장의 오직 유일하고 특별한 목적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임되어 임무를 수행중인 현직총장을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장의 이런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언행들은 학교의 혼란만을 가중시켜 왔습니다. 학교의 비전과 발전방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총장을 내쫓기 위해 이사장이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온 행위는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KAIST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오명 이사장은 반드시 사퇴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이 자리가 국민여러분들과 공식적으로 대면하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6년 전 제가 한국에 온 이유는, 오직 조국과 KAIST에 대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힘든 일도 겪었지만, 위대한 나의 조국을 위해 남은 여생을 헌신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과 KAIST를 향한 제 열정은 뜨겁기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지난 6년간 저는 KAIST의 미래에 분명한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느껴왔습니다. 국민여러분께서도 우리 KAIST가 한국은 물론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 대학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가져 주시길 머리 숙여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시간동안 제가 고국에 처음 돌아왔을 때의 초심을 기억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AIST 총장 서남표 배상
다음은 서 총장과 일문일답.
- 25일 이사회에 총장 해임안이 안건으로 올라온 걸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
"안건에 대해 보고 받은 것은 없다. 여러가지 안을 생각하고 있다고만 들었다."
- 지난 7월 이사회 이후 오 이사장과 만난 적이 있는지
"그동안 여러번 오 이사장과 직접 만난 적도 있고 간접적으로 만난 적도 있다. 합의내용을 왜 이행하지 않느냐고 말했고 오 이사장 측은 '죄송하다, 내가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라고 답했지만 합의사항을 계속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 후 소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그 소위원회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 지난 7월20일 기자회견에서는 내년 3월에 사퇴하겠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왜 이제와서 하는지.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된건 아닌지
"합의사항만 이행하면 총장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전했지만 결국 이행되지 않았다. 오 이사장이 이사회측에 얘기해 이번 학기가 마칠 때까지는 이행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내년 3월 정기이사회를 마지막으로 자진 퇴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
- 만약에 합의조건이 이행된다면 사퇴를 번복할 생각인지
"아니다. 번복할 일은 없다."
- 합의조건에는 3월에 사퇴하기로 한 것이 포함돼 있는가
"계약해지를 해 달라는 것이다. 학교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려면 내가 계약해지를 당해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오 이사장이 이사회에 합의된 사항을 다 알려주지 않고 일부만 알려줬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오 이사장한테 물어봐라. 내가 답을 대신할 입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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