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긋불긋 나무사이로 낙엽이 떨어진 잔디밭에서 떼를 이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들때문이었다. 주변엔 멀치감치 서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어떤 엄마는 "우리아이가 필이 안와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며 걱정어린 얼굴을 하기도했다.
올해 처음으로 KDB산업은행이 미술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연 '전국 학생 미술대전' 현장이었다. 이 풍경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산업은행에서 웬 미술대전이지?".
'산업은행과 미술대전'. 안어울리는 조합속 산업은행의 문화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산업은행은 파이어니어(개척자) 정신’이라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타 시중은행들과 차별화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왔고 이번 미술대전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음악(국악), 체육 영재들을 지원해왔다.
이번 '미술인재 발굴'은 1년전 KDB금융그룹에 취임한 강만수 회장 '작품'이다. 강회장은 그동안 지원했던 영재 발굴 사업을 문화산업 관점으로 바라봤다.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그가 주목한건 미술이었다.
이날 학생 미술대전에 참석한 강 회장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또 한번의 발전과 도약을 위해선 디자인이 관건이다. 현대차의 자동차, 삼성의 스마트폰의 경쟁력과 승부의 관건의 원천은 순수미술에서 나온다"며 "미술인재 발굴과 육성은 우리나라 미래산업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숙원과제"라고 인사말을 했다.
강 회장은 "미술재능 인재양성을 사명감을 갖고 추진한다"고도 했다. "미술대전 수상 작품을 모두 구매하는 한편 판매수익금도 전액 장학금으로 사용하겠다고 했고 수상학생들에겐 겨울방학기간동안 해외연수도 지원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학생들도 학부모도 순간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이 미술대전 수상자(24명)에게는 총 상금 3천만원뿐만 아니라 뉴욕 워싱턴 미술관 탐방과 미술대학 세미나 참여 등 해외연수의 기회도 제공된다. 또 해외 미술 유학 지원이라는 보기 드문 혜택도 주어진다.
이날 '미술대전'에는 200명이 참여했다. 지난 9월 공모를 한후 총 2천여점의 출품작중 본선에 진출한 학생들이었다. 서예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글자문화와 정체성을 미리 확립하고자하는 취지로 서양에 캘리그래피가 있듯이 서예를 바탕으로 기품과 디자인 감각이 어우러진 텍스트 디자인 역시 중요하다는게 강 회장의 의지였다고 한다.
이전 미술영재발굴과는 확연한 차이다. 10여년전 김흥수 화백이 운영하던 '미술영재'교실도 있었지만 개인이 운영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또 그동안 미술영재프로그램이 개인의 재능을 육성하는게 전부였다면 이번 산업은행의 미술인재 발굴은 국가경쟁력의 주체로 키운다는 점이 핵심이다. 경기불황속 미술시장이 힘을 잃고 학생미술대전 또한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책은행이 나서 미술인재를 육성한다는 점에 미술계는 반기면서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길 바라고 있다.
3분40초짜리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들썩이게 하듯 '문화의 힘이 국가의 힘'이다. 기업의 문화공헌사업은 이제 선택아닌 필수다.'금호 음악영재'들이 세계 콩쿠르대회를 석권하며 선전하고 있듯 앞으로 '산은 미술영재'들이 세계미술시장을 휩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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