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의 정치 역정은 ‘피닉제’(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라는 별칭으로 요약된다.
판사 출신인 그는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 1988년 13대 국회에 입성했다.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해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1995년 최초의 민선 경기도지사가 됐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YS(김영삼)의 적자’로 각광을 받았으나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진 뒤 탈당해 국민신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이듬해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2002년 국민회의 후신인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만 해도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 밀리자 중도 사퇴한 뒤 또 다시 탈당을 했다.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을 얻은 것도 이 때부터다.
이어 자민련, 국민중심당에 입당하는 등 ‘정치적 유랑’ 생활을 거쳐 2007년 5월 민주당 후보로 세 번째 대선 도전을 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008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충남 논산 계룡·금산에 출마해 5선 의원이 된 뒤 2011년 10월 자유선진당에 입당했고, 지난 4·11 총선 때 6선 의원 도전에 성공했다.
이후 당 비대위원장을 거쳐 당명이 바뀐 선진통일당 대표를 맡았다.
그가 가진 당적만 해도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국민신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 등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13개나 된다.
한편 이날 합당으로 이회창 전 대표가 2008년 창당, 18대 총선에서 18석(비례대표 포함)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선진당은 4년여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대 총선에서는 충청권 5석에 그쳐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최근에는 이명수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으로 4석까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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