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천고마비의 계절, 푸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리다면. 그래서 문득, 밤하늘 수많은 별이 보고싶다면…. 대낮에도 밤인듯, 수많은 밤별들을 만나 깊은 생각에 잠길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제갤러리 신관 1층. 커텐을 치고 들어서면 한걸음 떼기도 어려울정도로 깜깜한 어둠속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펼쳐진다.
쏟아질듯한 밤하늘 별들이 눈에 익숙할즈음 또각또각 여자구두 발자국소리가 귀를 울린다.
누가 있는걸까?.
일본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 최재은(59)이 독일 스토르코프(Storkow)의 밤하늘을 촬영한 ‘유한성(Finitude)'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힐링아트'다. 발자국소리는 다름아닌, 돌로 뒤덮인 거리를 걷는 작가의 발걸음 소리를 녹음한 것.
해질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8시간 동안 서로 다른 세 방향의 하늘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으로 정지된 상태 같지만, 시간에 따라 은근하게 변해가는 하늘의 모습을 보여준다.
'명상적인 공간', 깜깜한 전시장에서 '멈추면, 보이는 것들'은 밤하늘의 별빛만은 아니다. 작가가 담아낸 하늘은 수억 광년을 지나온 별이 남겨놓은 시간성과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간성이 동시에 중첩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둠속 별들과 마주하면, 별 밤을 걷는 방랑자가 된 듯 인생의 소소함을 추억케 하는 밤하늘의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삶의 순환'을 일관성 있게 다루어 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하늘’을 주제로 '정중동'의 이미지 속에 흐르는 영원성을 가시화하고 있다.
작가는 “베를린 등 북유럽은 겨울에 흐려서 작가들에게 빛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하루 2-3시간씩 하늘을 보면서 무한한 하늘과 유한한 나의 만남이 이뤄졌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내 작업이 개념미술로 전환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별자리와 일기를 해석함으로써 세계와 생존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며, 동시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경외하며 종교적인 절대적 권위의 영역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지구 어디에서든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공간이며 사색의 대상으로 인간들은 스스로의 좌표와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하늘에 질문했다."
작가는 “개념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서 독일로 이주했는데 그곳의 순환적이고 생태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하늘에 눈을 뜨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밤하늘과는 극적인 대로를 이루는 2층으로 이어진 전시에는 칠흑 같은 밤하늘의 숭고함으로부터 새벽에 이르러 떠오르는 일출 장면의 태양을 포착하고 있다. 또 25점의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만물상'이라는 작품은 매 순간마다 떠오른 단어와 문장들을 짧은 시구들을 보여준다. 낡아 버려진 헌 책들에서 얻은 누런종이에 작가가 직접 쓴 글귀들은 빛 바랜 세월의 흔적들 위에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이번 전시 타이틀은 '오래된 詩'다. 전시는 11월22일까지.(02)735-8449.
◆최재은= 1953년 서울 태생으로 197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2010년부터 근거지를 독일로 옮겨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76년 일본을 방문, 소게츠(Sogetsu)파의 혁신적인 이케바나(Ikebana, 일본의 전통적인 꽃꽂이) 양식에 매료되어, 일본 아방가르드 예술의 거장인 히로시 테시가하라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수학하였다.
조각, 설치, 건축, 영상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 활동을 해왔다.1985년 이사무 노구치 조각에 작업한 설치 작품을 선보인 첫 개인전 이래, 국내 외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1995년 일본의 커미셔너 이토 준지의 추천으로 제 4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일본 작가로 선정된바 있다.그동안 2010년 도쿄 ‘하라 미술관’ 2007년 ‘로댕갤러리’, 1993년 ‘국제갤러리’, 1991년 이탈리아의 ‘갤러리아 밀라노’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인 장충동 경동교회 옥상에 대나무와 조명 등을 이용한 <synchronous>를 선보였고,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참가하여 4만여개의 빈 병으로 재생 조형관을 설계했다. 같은 해 파리 유네스코 건물 옥외에서 열린 다실 축제에서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 샬로트 페리앙, 안도 다다오), 스승인 히로시 테시가하라와 함께 정원을 무대로 작품을 전시했다. 1994년 삼성의료원에 <시간의 방향>, 1998년 해인사의 성철스님 사리탑 <선의 공간> 등 굵직한 대형 공공 조형물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삼성의료원, 프라하 국립 미술관, 도쿄 하라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