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한족, 1948년 7월
출신지: 산시(山西)성 톈전(天鎭)
학력: 시베이(西北)대학 역사학과
현직: 상무위원, 기율위 서기
특기사항: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
주요경력:
1982년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 근무
1988년 중국 농촌신탁투자공사 총경리
1989년 중국건설은행 부행장
1993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1994년 중국건설은행 행장
1997년 광둥성 부성장
2002년 하이난(海南)성 서기
2003년 베이징시 시장
2007년 국무원 부총리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왕치산(王岐山)은 1948년 산둥성 칭다오에서 평범한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왕치산은 문혁이 발발하자 오지인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됐다. 이 곳에서 혁명원로 야오이린(姚依林)의 딸인 야오밍산(姚明珊)과 교제하게 되고 결혼까지 이어진다. 이 때부터 그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1973년 시안(西安) 시베이(西北)대에 들어가 역사를 전공한 만큼 역사에 대해 해박하다. 1980년 부총리였던 장인의 영향으로 경제분야로 방향을 틀고 이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다가 1988년 농촌신탁투자공사 총경리로 기용되면서 금융계에 발을 담근다.
이후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신임을 얻어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중국건설은행 행장에 오른다.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의 여파로 광둥성의 금융분야가 불안해지자 중공중앙은 그를 광둥성으로 급파해 위기를 해소토록 했다. 2002년 부동산거품이 문제되던 하이난성의 서기로 파견됐다. 2003년 사스가 창궐한 베이징시에 시장으로 투입되며 그는 ‘소방수’라는 별명을 얻는다. 2007년 정치국위원에 올라섰으며 국무원 부총리로 활약했다. 그리고 이번 1중전회에서 기율위원회 서기로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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