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20년, 그 성과는?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습.

아주경제 이혜림 기자=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진입했던 1993년 6월의 어느날. 세계 주요 거점도시를 탐방 중이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안에서 '후쿠다 보고서(삼성 디자인 부문의 문제점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게 된다. 품질·디자인 등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변화가 없다는 내용을 접한 이 회장은 동승했던 실무진을 크게 질책하며 긴급회의 소집을 지시한다.

그리고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 이 회장은 그룹 임원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위기의식과 변화를 강조한 '신경영'을 선언한다. '이대론 안 된다'는 강한 위기감의 발로는 강도 높은 체질개선 주문으로 이어졌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얘기도 여기서 나왔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단 한 개의 불량제품을 만드는 것도 회사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자 경영의 범죄행위"라며 양적위주 경영에서 품질위주 경영으로의 변화를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해외 간담회는 68일간 이어졌다. 당시 이 회장은 런던·오사카·후쿠오카·도쿄를 오가며 사장단을 대상으로 800시간 동안 1800여명의 임직원에게 350시간을 직접 강의하며 삼성인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에 일류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혁신을 몰고 왔다. 1995년 구미 운동장에서 무선전화기와 키폰 등 15만대의 전화기를 불태운 '구미 화형식'은 품질경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이 동시에 휴대폰 시장에서 '애니콜'·'갤럭시' 신화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올 3분기 삼성전자 휴대폰 판매량은 1억대를 돌파했고 연말에는 글로벌 판매 2억대 돌파를 눈앞에 뒀다. 스마트폰 또한 휴대폰 제조사 중 처음으로 분기 판매량이 5000만대를 넘으며 세계 1위 휴대폰 회사의 입지를 굳혔다.

'양'에서 '질' 중심으로 삼성의 경영 패러다임을 바꾼 이 회장의 신경영은 회사의 외적 성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삼성그룹의 순이익은 신경영 선포 당시인 1993년 4200억원에서 지난해 20조원으로 47배가량 늘었다. 매출 역시 41조원에서 273조원으로, 자산은 41조원에서 435조원으로 증가했다. 임직원 수는 19만명에서 37만명으로 늘어났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의 핵심은 인재'라는 철칙 하에 인재육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개혁의 첫걸음으로 7·4제를 도입했다. 이 회장은 오전 8시30분이었던 업무 개시 시간을 1시간30분 앞당겨 오전 7시로 조정하고 퇴근시간도 오후 4시로 앞당겼다. 일찍 업무를 마치고 운동·어학공부 등 자기계발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이 같은 7·4제 도입은 삼성 임직원들로부터 '개혁'을 몸소 느끼게 했다. 아침 잠을 깨워가며 '변해야 산다'는 위기의식을 던져줌과 동시에 오후 시간은 임직원 개인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했다.

여성인력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신규 채용인력 가운데 20% 이상을 여성으로 뽑으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1993년 첫 여성 대졸공채 사원을 선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학력·성별 철폐를 골자로 하는 '열린 인사개혁안'을 내놨다. 이 회장은 올 4월에도 여성인력들과 오찬을 갖으며 여성인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현재 30%에 해당되는 여성인력 비율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내년은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20주년을 맞는 해다. 삼성그룹이 새로운 25년을 넘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장수하기 위한 제2의 '신경영' 전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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