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영화산업도 경제민주화 필요하다”

사진=문희융 영화 감독
문희융 영화감독=영화는 예술적 표현의 장르다. 동시에 경제적인 도움이 절대적인 산업적 요소가 강한 분야이다. 1990년대 이후 영화가 돈이 되는 매체라는 인식이 생긴 이후에 한국 영화계로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극장을 함께 소유하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극장에 상영되지 않으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영화의 특성상 그 힘은 더 막강했다.

늘 제작비 확보가 어려웠던 영화사들은 영화에 투자되는 자금의 유입이 반가웠다. 자본의 문제가 해결되는 점은 목마른 우물에 단비와 같았다. 그러나 투자금 회수를 원했던 그들의 요구 또한 당연함으로 변질됐다.

투자자들은 실패를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영화 제작 전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성공이 곧 자본의 회수이고 그들 자신의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유행처럼 한 장르의 작품들이 봇물을 이루기도 했고 스토리는 더 크고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작지만 알찬 예술적 작품 보다는 자본이 투입돼 큰 수익을 이룰 수 있는 영화들이 집중됐다. 이는 영화계에도 양극화 심화가 일기 시작한 배경이다.

항상 할리우드 영화보다 흥행에서 뒤처졌던 한국 영화들은 이를 계기로 1000만 관객이 등장했고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의 논리가 영화 산업을 재편하게 됐다. 다시 말해 돈이 되는 영화 위주로 흘러간다는 걸 의미한다.

흥행성이 보장되는 배우와 감독, 그들 위주로 영화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모든 시작은 기획과 제작을 담당하는 제작사 위주로 흘러갔다.

영화에서 감독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약화되는 모순을 낳았다. 대기업인 모기업의 파워로 캐스팅이나 감독 선임은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하며 때로는 영화 제작 중간에 해임되는 불운을 맞기도 한다.

제작 전반에 있어서는 감독의 목소리보다 제작자의 입김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감독은 일반 스텝들과 같은 위치에서 기계적인 연출만을 담당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했는지 모른다.

최근 한 유명감독이 제작사와의 갈등을 빚고 영화 마무리 단계에서 제작 현장을 떠나기로 한 사연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감독이 요구했던 건 최종 편집권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감독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나치게 몰입시켜 작품을 망치거나 독선에 빠지는 일은 삼가할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연출권이나 편집권마저 흥행이라는 이름으로 보장 받을 수 없는 현실은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상실감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영화는 예술적 장르이자 산업이다. 영화는 만들어져도 극장에 걸리기 이전까지 생명을 가질 수 없는 특수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과 자본의 힘이 어느 때보다 막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측면이 산업적인 면에 의해 훼손되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이 자본의 논리에 사라지는 일들은 없어야 한다. 때마침 경제민주화와 성장이라는 양대산맥 속에서 국민들의 소중한 한표가 모여 박근혜 후보를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상징적 의미보단 사회 양극화, 일자리 창출, 재벌 개혁 등 박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영화계 등 문화 전반에 혼재돼 있는 불편 부당성의 고름은 이미 터진지 오래다. 치유 처방전을 내리는 등 개선을 가해야하는 시기가 도례했다는 걸 의미한다.

재미있는 영화, 관객이 바라는 감동 및 의미라는 것이 뭉쳐져 다양한 장르와 목소리가 함께 하는 한국영화로 개선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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