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박근혜 당선자는 ‘18년간 한국을 통치하며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독재와 인권유린의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표현이 가장 흔했다. 맞다. 그 규정이 어찌 보면 그 녀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당선자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인으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뭐 그다지 아버지같은 리더십과 지도력을 가졌는지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지 않은 해외 교민들이 많았다. 박 후보의 당선은 그만큼 그동안 발전해 온 한국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기업이나 민간이 세계 속에서 이룬 한국 브랜드 가치를 끌어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국민의 과반수가 그 녀를 지도자로 원한다면 무언가 과거와 현재를 통합 또는 화해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국가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버럴’로 지칭된 문재인 전 후보는 한국에서는 주로 좌파로 불리며 이를 싫어하는 유권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전혀 그 이미지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버락 오마마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리버럴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시카고 뒷골목에서 노동, 인권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면 문 전 후보는 오바마와 가장 가까운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의 당선을 바랬지만, 한국 유권자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한 수 위였다. 그는 낙선됐다.
한 편으로는 한국 진보, 좌파 진영이 예전에 보여준 교조적이고 편협한 이념주의가 떠올라 문 전 후보가 국가적 리더로서 충분한 자질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문 전 후보가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을 내각에 쓰다보면 과거 진보진영의 폐해를 지닌 사람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치는 항상 그 때 뿐이다. 누구의 당선을 바랬든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한국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양쪽 국민의 절반이 당선과 낙선에 따라 침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때 싫었던 후보가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그 때 좋았던 후보가 다시 싫어지기도 한다. 그게 정치인 것 같다.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에서 가장 관건이 되는 이슈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과 2003년에 두 차례에 걸쳐 확대 시행한 소득세 감면안이다. 부시는 재임기간 인기가 정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고 수천명의 군인들의 목숨과 수조달러의 재원을 전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미국 경제가 더 휘청거렸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이 시행한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소득세 감면안이다. 소득 구간마다 다른 세율과 복잡한 공식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저소득층의 연방소득세는 다 돌려줬다. 약 4만달러 내외 4인 가족 가구는 거의 연방소득세를 안 냈다고 보면 맞다. 물론 집이 있냐 없냐 등 공제 항목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연간 약 3000달러 정도의 연방 세금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있으면 한 명당 1000달러의 세금 크레딧(credit)을 돌려줬다. 그래서 집이 있는 저소득층 4인 가구의 연방소득세 환급액이 5000달러를 훌쩍 넘기곤 했다. ‘13번째 달 월급’이 원래 받던 매달 월급보다 훨씬 많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부시의 세금 감면안은 당시 민주당에서 격렬하게 반대했다. 재정적자가 일어날 수 있고, 세금은 한번 덜 받기 시작하면 다시 올려 받기가 정말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오히려 부시의 세금감면안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고심 중이다. 아이러니다. 부시의 인기는 바닥이었지만 오히려 지난 10년간 미국 중산층들의 살림살이에 큰 도움을 준 대통령이었다.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대선에서 당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유권자들은 이같은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박 당선자도 분명 장점이 있을 것이다. 잘 지켜보고 비판하고 지지하면서 국민이 잘 이끌어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란 결국 국민이 하기 나름이다. 미국에서 부시가 그리워질 줄이야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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