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휩쓸려 재벌 총수를 표적삼은 사법부의 칼날이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재벌 봐주기도 안 되지만 역으로 총수가 희생양이 돼서도 안 된다는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8일 재계에 따르면 배임 등의 혐의로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 김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구치소가 김 회장에 대한 구속집행정지 건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했고 8일 재판부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앞서 김 회장은 지병 악화 등의 사유로 보석을 신청했지만 5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었다.
김 회장은 지난 7일 건강이 나빠져 8차 공판에도 불참했다. 병원 측에서는 김 회장이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고 수감 중 급작스런 체중 증가로 호흡곤란을 겪는 데다 이로 인한 돌연사 가능성마저 제기된다는 의견서를 구치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원로인 김승연 회장이 건강악화로 위중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안타까웠는데, 법원이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보석 여부 판단 등에 대해서도 사법부가 합당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고 그에 따른 우리 경제 역시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재벌 총수라는 이유로 정치적 목적 등에 의해 압박을 받는다면 이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도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겠느냐"며 "특히 김 회장의 경우 건강상의 문제도 불거지고 있는 만큼 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경제민주화 논란과 관련해 배임죄의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기업 경영판단에는 위험이 내재하는데 경제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서 최근 검찰이 재벌 개혁에만 집중하면서 재벌 총수에 대해 무리하게 배임죄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는 구속요건 취지가 명확하지 않아 일반 형사범보다 무죄 경우가 5배나 많다"며 "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범죄보다 분쟁이 많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또한 "배임죄는 개인 이익을 챙기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쳐야 성립하는데 최근 판례를 보면 그런 위험만 있어도 처벌하고 있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당시 채무가 누적된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은 계열사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경영판단이었다"며 "이를 회장님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도 없고,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곳도 없는데 검찰이 위험성만으로 배임죄를 적용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화는 총수의 공백으로 주요 사업 진행에 차질을 겪고 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은 1차적 계약 수주 건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추가 수주가 기대됐던 상황에서 상황 진척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해외 경쟁기업들을 제치고 한화가 이라크에 처음 진출해 현지 정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현재는 총수 부재로 현지 정부도 추가 사업을 용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고 전했다.
한편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은 이날부터 3월 7일까지다. 김 회장은 구치소에 연계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보다 큰 병원으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공판 기일은 21일 오전 10시에 진행될 예정이지만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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