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 재정으로 귀속되는 과징금을 활용해 특정 업계의 손실을 직접 보전해주는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정책이다.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당국까지 긴장하고 있다.
15일 전자업계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외국계 LCD 패널 업체들의 담합행위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중 절반가량을 중국 내 9개 TV 제조업체에 돌려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1억7200만 위안(약 292억원)을 비싼 값으로 LCD 패널을 구입해 손실을 입은 하이얼과 창홍 등 중국 TV 제조업체에 돌려주겠다는 것.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함께 경쟁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는 셈이다.
해당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조치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지난해 9월 담합사실을 확인했으며 현재는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경쟁당국인 공정위도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 등 담합 가담 업체에 피해 업체의 손실액을 직접 보전해주라고 명령하지 않은 이상 이는 중국 정부의 재량으로도 볼 수 있다"며 "다만 당국이 과징금을 거둬 특정 업체 및 업계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은 국내는 물론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관련 내용에 대해 확인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향후 추이를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 정부가 외국계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반독점법은 지난 2008년 발효됐다. 이번에 적발된 담합행위는 법안 발효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반독점법 대신 가격법이 적용됐다.
가격법은 위법소득의 5배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이번에 삼성과 LG에 부과된 과징금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다. 그러나 반독점법은 위법소득 대신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탓에 과징금 액수가 최대 10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공정위 국제카르텔과 관계자는 "중국에는 담합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 여러 개 있다"며 "중국 정부가 자국 내 담합행위에 반독점법을 본격적으로 적용할 경우 과징금 규모가 훨씬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재계 인사는 "중국의 담합행위 규제 증가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거둬들인 과징금으로 자국 기업의 피해를 보전해주는 사례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외국계 기업들의 과징금 액수가 커질수록 직접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들에 돌아가는 수익도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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