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로존 금융시장이 잠잠하다. 무엇보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수익률이 안정세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다음의 위기 국가로 지목되었던 스페인의 경우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최근 5%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재정위기 재발에 대한 우려가 가시면서 유럽 각국 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때 유로당 1.2달러 근처까지 하락했던 유로화 가치는 최근 유로당 1.33달러대까지 회복했다.
유로존의 안정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위기해결 의지에 기인한 바 크다. 지난해 중반 드라기 총재가 필요할 경우 재정위기국의 단기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국채수익률 안정에 기여한 요인이다. 실제 국채매입에 나선 바 없지만 국채수익률은 크게 하락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무제한의 발권능력을 동원하겠다는 결정과 그 실행능력에 대해 시장이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른바 드라기 효과다.
지난해 11월말 난항 끝에 그리스 구제금융이 재개된 것도 유로존 불안을 잠재우는 요인이 됐다. 그리스가 강도 높은 긴축안을 마련한 데다, 이에 화답하여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정책당국도 그리스의 목표 국가부채 비율 달성 시한을 다소 늦추는 등의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실물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로존 전체로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한 데 이어 올해 역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기 어렵다는 전망이 대세다. 올해도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2월에 예정된 이탈리아 총선 결과가 이탈리아의 개혁 지속을 결정하는 시험대로 주목 받고 있다. 그리스도 정치적 리스크가 남아 있다. 긴축 반대 세력인 시리자가 지난해 총선에서 집권에 실패했지만,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지 오래여서 조기총선이라도 생긴다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렉시트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로존이 이제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장기간의 위기를 거치면서 유로존 정책당국의 위기대응능력이 높아진 데다, 문제해결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높다는 점도 신뢰를 얻고 있다.
물론 현재 유로존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화만의 통합을 보완할 수 있는 은행동맹, 재정동맹과 같은 제도가 진전을 보여야 한다. 국가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여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과거 큰 위기를 겪고 난 후 쇠락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해지는 나라도 있었다. 유로존 역시 중장기적으로 잃어버린 10~20년 세월을 감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구조조정에 성공하여 강한 유로존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가 관심거리다. 유로존 내에서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 강한 나라들이 버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문제 국가들도 구조조정에 성공하여 경쟁력 있는 국가들로 탈바꿈한다면, 유로존이 시스템적으로 튼튼해지고 대외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가 있다.
유럽은 당장 어렵다고 해서 우리 기업으로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니다. 아직 세계경제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중요한 시장이다. 유로존 시장에서 아직 리스크 관리가 여전히 필요해 보이지만,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유로존 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면, 값싸게 나와 있는 기업 및 자산들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에 귀 기울여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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