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은 '내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 총리 인선에 본인의 통치철학이 묻어나는 만큼 심혈을 기울여 왔다.
총리의 위상은 헌법에서 대통령 보좌와 내각 통할, 나아가 장관 제청권과 해임건의권까지 부여하고 있지만 '의전총리' '대독총리' 등 현실에서는 '실세총리'와 거리가 먼 경우가 더 많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노태우 정부의 초대 총리는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 '보통사람'이라는 대선 구호에 걸맞게 거물급 정치총리 대신 서울대 총장 출신을 총리에 앉혀 군부 독재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황 전 총리는 그러나 육사 4기 출신으로 유신과 군부정권의 요직을 거쳤다는 점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에 따른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초대 총리를 맡은 것은 대선 기간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라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총리를 비롯한 경제·통일·외교 분야의 내각 추천권을 자민련에 주기로 한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나눠먹기' 식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실세총리' '책임총리'라는 말이 탄생한 것도 이 때였다.
자민련은 '공동여당 포기'를 선언한 2000년까지 박태준·이한동 총리를 연이어 배출했다.
노무현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강한 개혁 이미지를 보완할 안정형 인물로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보수 성향의 고건 전 총리를 또다시 발탁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총리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는 지적에 "총리는 '몽돌'을 잘 받쳐줄 수 있는 '나무받침대' 같아야 서로 쪽이 잘 맞지 않겠느냐"며 개혁적인 대통령과 안정된 총리를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실용주의 구상에 걸맞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승수 전 총리를 발탁했다. 경제·외교 분야의 3개 장관을 역임하고 대통령 비서실장, 3선 국회의원 등 전문성과 정무 능력을 인정한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한 전 총리는 '자원외교형', 후임인 정운찬 전 총리가 '세종시 총리'라는 '반쪽짜리' 평가를 받은 것도 총리에게 국정 전반의 통할권을 넓게 부여하지 않는 이 대통령의 용인술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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