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이 셀까, 리커창 총리가 셀까.” 중국의 학자나 기자들을 만나면 자주 물어봤던 질문이다. 중국공산당 서열로 다지면 시진핑 총서기는 1위다. 그리고 리커창 부총리는 2위다. 때문에 이 질문은 표면상으로 보면 우문(愚問)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하는 중국인은 없었다. 현재 국가주석은 공산당 서열1위며 총리는 2위지만, 국가주석과 총리의 역할이 나눠져 있으며 총리의 권한이 결코 국가주석에 비해 소흘히 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장쩌민 주석 시절에도 리펑 총리나 주룽지 총리의 권력은 막강했다. 사자후를 뿜어내며 중국 관료사회를 호령하던 주룽지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장쩌민과 리펑이 함께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의 정치제도에 비추어 중국의 국가주석을 한국의 대통령에, 중국의 총리를 한국의 총리에 빗대어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보면 ‘급이 안맞는데 웬 정상회담?’이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또한 가끔씩은 우리나라는 총리가 한 정권에만 수차례 바뀌는데 중국은 원자바오 총리가 10년동안 롱런한다며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총리와 우리나라의 총리가 명백히 다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오류들이다. 우선 중국의 총리는 국무원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관 임명권은 물론 국무총리 임명권도 대통령이 쥐고 있다. 중국 총리는 국무원의 각 부 부장(한국의 장관)에 대한 인사권을 손에 쥐고 있는 만큼 부장들은 후진타오의 눈치보다는 원자바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부장뿐 아니라 사(司)장급(우리나라 국장급) 인사권 역시 총리의 손에 있다. 부장에 오르려 하는 사장들과 현직을 지키면서 연임이나 승진을 노리는 부장들 모두 원자바오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구조다.
그리고 중국 국무원의 국무회의는 총리가 주재한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책, 복지정책, 치안, 사회정책, 무역문제, 환율문제 등 거의 모든 민생과 경제분야를 국무원 총리가 공산당 총서기의 별다른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처리한다. 이처럼 국무원의 업무는 총리가 전적으로 관할하고 있다. 총리의 임기 역시 공산당에 의해 5년 내지는 10년으로 보장돼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총리에 올라서면서부터 10년을 보장받았다. 리커창 역시 2013년부터 10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할 것이다. 애초부터 임기가 불분명한 우리나라의 총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성격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은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대통령이 두 명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특히 중국 경제는 현재 굴기를 지속하고 있다. GDP규모에서 G2에 올라섰으며 향후 10년 동안 7~9%대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더해 서부대개발, 환경보호, 산업구조조정, 도농격차 동서격차 빈부격차 해소 등 굵직한 국가적인 현안이 산적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총리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정부의 예산규모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국무원은 예산편성에서 집행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주무른다. 물론 마련된 예산안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받게 돼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예산에 일일이 심사하고 간섭하는 등의 강력한 견제를 하지는 않는다. 2011년의 중국 중앙정부의 예산은 2010년 대비 11.9% 늘어난 10조220억 위안이다. 한화로는 약 1702조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예산규모가 309조인 것과 비교하면 5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이 규모는 향후 10년 후면 두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나라의 10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총리가 국무원을 통할한다고 해서 국가주석이 완벽하게 국무원의 의사결정에 배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가주석은 중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한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국가주석이 국무원 총리보다 더 강한 입지를 지닐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주석은 공산당 총서기가 겸임한다. 공산당 총서기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한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공산당의 통제를 받으며 공산당 총서기가 군대의 최고원수다. 또 공산당 내에는 기율검사위원회와 정법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기율위는 공무원과 당원들의 비리행위를 적발해내는 기구며 정법위원회는 사회안정과 국가안보를 관할하는 부서다. 이 두 개의 부서는 국무원 산하의 감찰부와 공안부와 긴밀하게 엮여 있다. 때문에 국무원에 외교부와 국방부, 감찰부, 공안부가 소속돼 있더라도 이들 부서는 아무래도 당의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중국의 주요정책은 모두 공산당 상무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원자바오 총리는 상무위원회 9명 멤버 중 한 명이었으며 후진타오 역시 상무위원의 한 멤버였다. 시진핑과 리커창 역시 상무위원회 7명 멤버 중 한 명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진핑은 공산당 총서기로서, 인민해방군의 수장으로서, 국가주석으로서 리커창 총리를 협조할 수도 견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총리에 대한 상무위원들의 견제는 구조상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의 공산당내 서열은 3위였다. 후진타오 주석이 1위며,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이 2위였다. 실질적인 역할을 보면 국무원 총리가 서열2위를 차지하는 게 맞지만 정파 간의 세력판도에 의해 서열3위가 됐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동안 국무원 총리였던 리펑은 장쩌민 주석시절 장쩌민에 이은 공산당 서열 2위였다.
이후 주룽지가 총리에 올라서고 리펑이 전인대 위원장으로 옮겨갔지만 리펑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전인대 위원장이 서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주룽지 총리가 서열 3위였다. 이후 2003년 원자바오가 주룽지로부터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리펑이 사임한 만큼 국무원 총리가 서열2위로 복귀해야 했지만 원자바오의 당내 세력은 약했다. 더불어 상하이방의 세력은 강력했다. 때문에 상하이방인 우방권 전인대 위원장이 서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총리내정자인 리커창이 공산당 서열 2위에 올라선 만큼 총리의 권한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시진핑과 리커창, 서열 1위와 서열 2위지만 그 권력의 강도는 용호상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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