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제주작가' 강요배 "요배라는 이름엔 4.3항쟁 슬픈역사가 담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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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0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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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일부터 학고재갤러리서 5년만에 개인전..회화 40여점 전시

제주작가 강요배화백이 한라산에 내려앉은 잔설을 부감법으로 그려낸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불혹의 나이 마흔에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갔다. 고향이기도 하지만 도시생활, 문명생활이 체질에 안맞았다는게 그의 말이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출신으로 졸업후엔 서울 창문여고에서 미술교사로 6년간 일하기도 했다. '늘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 때려치고 제주로 온게 벌써 22년째다.

제주에서 20년, 서울에서 20년, 다시 제주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환갑을 맞은 그는 제주의 억센 바람을 닮았다.

'제주 바람작가' 강요배(62).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제주 3다(多)'를 만끽하며 문명의 때없는 3무(無)로 지낸다. 바로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없는 생활을 하는 질긴 '제주 남자다'

'바람 작가'. 그가 몰고 왔을까.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난 날(20일)은 여인들의 머리칼을 헤집어놓을만큼 바람이 불었다.

5년만에 여는 개인전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그는 '서울에 내려왔다'다고 했다.

"서울 사람들이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뭍에 나오면 '제주도에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제주가 변방이라고 생각해보적이 없다"는 작가는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했다. 산 바람 바다있는 '제주가 좋다'는 그는 "더 늦으면 못 온다'면서 제주에서 살기를 은근 부추켰다.

“제주는 자연이 가진 질감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기후 변화, 날씨 변화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고 위안도 얻고 힘도 불어넣어 주고 마음을 다스리고 다잡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2008년 연 개인전 이후 오랜만에 그림을 들고 올라온 그는 고단한 세월을 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선 그의 작품‘겨울 팽나무’(2008)처럼 꼿꼿한 위엄은 여전했다.

반면, 야성적인 손길이 강렬한 '강요배 스타일' 작품은 좀 뭉근해졌다. "이번전시는 딱히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어요."

작가가 제주 귀덕리로 이사하여 심혈을 기울인 5년간의 작품들은 경계가 없다. 오는 27일부터 여는 전시에는 호박, 홍시, 칸나꽃등 소소한 일상풍경과, 3m,1m 크기가 넘는 '파도와 총석', '옴부리 백록담'같은 위용을 부리는 대작등 회화 40여점과 드로잉 10점도 함께 선보인다.

"자연과의 공명을 그렸다"는 작품에는 제주의 풍광이 살아있다. 집 창문에서 내다본 풍경이나 새벽녘 해뜨기 직전의 하늘, 중문과 대포 해안을 따라 서 있는 총석에 부딪힌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거품 등 제주의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의 속살이 담긴 화폭은 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명태처럼 거칠고 단단하다.
길위의하늘, 2011, Acrylic on canvas, 194x259cm.

어둑신한 새벽녁, 마른 바람에 서걱이는 나무위로 하늘빛이 열리는 '길위의 하늘'은 딱 '강요배 스타일'이다.
"제주는 맑은 날뿐 아니라 먹장구름에 휩싸인 날이 더 제주답게 느껴집니다."

작가 스스로도 아름다워 '명주바다'로 이름 붙였다는 쪽 빛의 화면은 볼수록 마음을 빼앗긴다. "파도 없이 잔잔한 제주도의 봄 바다가 햇빛을 받아 비단처럼 반짝일 때의 모습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며 안주삼아 만져본다는 늙은 호박이 들어앉은 그림은 이발소(돼지)그림처럼 정겹고, 바위에 부딪혀 깨지며 흰 포말꽃이 터지는 '파도와 총석'은 그의 그림답다.

하지만 어느 그림은 추상의 경계에서 손짓한다. 설명을 듣기 전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그림도 나왔다. 신작 '동' 은 색면추상의 대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떠올릴 정도다.
강요배. 동, 2013, Acrylic on canvas, 112x162cm.

"검은 평원에 푸른 안개를 딛고 노란 빛 물결로 떠오르는 동트는 햇살"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하지만, 그냥 보면 '감성적인 추상회화'로 다가온다.

푸른바탕의 색면이 강조된 '여명'이라는 그림도 낯설다. '이젠 추상화로 넘어가는 것이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찌꺼기가 없다.

"밤새 술을 마시고 동터온 새벽에 바라본 바깥 풍경입니다. 허허~"

그가 온 몸으로 느낀 풍광을 숨막히게 토해낸 화폭은 정서적 반응이 강하게 감지된다. '깊은 생각'을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쏘아대는 그는 "나이가 드니 많이 버리게 된다"고 했다.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다며 "이제 죽음과 삶, 우주로까지 화두가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요즘 개념미술이 대세라고 하지만 강박관념에 그려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창작해도 자기답기가 어려운 시대아닙니까. 예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형성해나가는 것입니다."

제주의 풍광에 영혼을 담아 그려온 그에겐 '민중미술작가' 꼬리표가 붙어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고 1989년부터 3년간 4.3 제주항쟁 연구자들과 연구논문, 인터뷰 자료, 현장답사 등을 통해 제주 민중항쟁사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자연의 풍광을 그리고, 추상화로 옮겨간다고 민중미술작가가 아닌것은 아닙니다."

그는 "민중미술을 정치적으로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나는 우리 자연이 곧 민중의 삶의 터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자연을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광범위한 개념으로서 민중미술을 설명했다.

학고재 우찬규대표(왼쪽)는 강화백과 만난지 20년이나 됐다며 이번 전시를 기념으로 두툼한 화집을 발간한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우찬규 대표 지원 덕분에 4.3항쟁 연작을 그릴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사진=박현주기자

'제주 남자'강요배에게 4.3항쟁은 떼어놓을수 없다. 1992년 제주 4.3항쟁을 다룬‘제주민중항쟁사’연작을 내놓은 그는 민중미술작가로 급부상했다. 제주출신으로 온몸으로 체득한 '제주의 한'을 풀어낸 이 그림은 '제주의 역사화'로 자리매김되어있다.

"지금도 매년 4월 3일이면 제사를 올리는 마음으로 제주항쟁에 대한 그림을 한 점씩 그린다"는 그에게 4.3항쟁은 그의 독특한 이름으로 각인된 슬픈 역사다.

"4.3 항쟁당시 누군가 이름을 불러서 돌아보면 죽어갔던 사람들을 보며 아버지는 생각했죠. 쉽게 부를수 없는 이름을 짓자. 그래서 형은 거배(서강대 교수), 나는 요배라는 이름을 달게 됐지요."


생명력이 움트는 계절, 꿩 개구리등 산속 식구들의 짝짓기로 동네가 시끌시끌하다면서도 미소가 번지는 그의 얼굴은 속박과 굴레없는 작품과 닮았다.

일순간 압도해가며 바람을 휘갈린 듯, '강요배 표' 작품은 터치(필획)감이 살아있다.
'붓바람, 붓춤'이 만들어낸 변화무쌍한 제주풍경은 가까이선 안보인다. 멀리 떨어져야 드러난다. 웬일일까, 한발자욱 떨어져야 보이는 광활한 풍경은 곤두선 삶의 비늘을 어루만진다.

"작업하는 사람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화가도 관람객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이죠. 그림을 보고 ‘아’ 하는 순간 관람객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응이 있어야 진정한 작품이고요. 어떤가요 제 작품이….허허허”전시는 4월 21일까지. (02)720-1524.
학고재갤러리는 27일 오픈하는 강요배개인전에 옥색 바닷가에 새빨간 칸나꽃잎들이 바람을 품은 '해.풍.홍' 그림을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사진=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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