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동열이 지난 1년간 히말라야에서 직접 그려온 안나푸르나 칸찬중가 그림을 3일부터 선화랑에서 선보인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해병대, 베트남 참전 첩보군인, 술집 바텐더, 로큰롤 클럽 문지기, 태권도 사범….
삶은 선택의 연속. 마약과 과음으로 죽음의 문턱에도 두번 갔다온 그는 화가가 되기까지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여왔다.
뉴욕에서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재미작가 최동열(62)이다.
어린시절 그의 꿈은 미술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경기고를 나와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였다. 지금의 서울 인사동 아흔아홉칸 짜리 부잣집에서 자란 그는 정치인을 꿈꾸며 경기중학교를 다녔다.
할아버지는 1884년 갑신정변의 시발점이 된 우정국사건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학교를 세웠고 관서대 법대를 나와 민족대표 33인을 변호한 우리나라 초대 변호사였다.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을 쓴 소설가 나도향의 누나였던 할머니는 우리나라 첫 피아니스트였다.
거창한 집안의 장손이었던 그는 인생 계획표였던 경기고 진학에 실패하면부터 천둥과 먹구름속에서 인생을 배웠다.
15세에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한국외국어대에 들어가 베트남어를 전공했다. 이후 해병대에 지원해 17세 때 베트남 전쟁에서 2년여 동안 포로 심문 등 첩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제대후 1972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정치학을 공부하기위해 대학에 다녔으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는 대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져 학교를 때려쳤다.
술과 여자 마약에 빠진 방탕한 정신과 욕망의 탄탄한 과녁들로 두번이나 죽을뻔하기도 했다.
어느날 죽음의 문턱을 건너온 그에게 금발의 미녀 화가가 다가왔다.
"미녀 화가와 함께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로 가서 인적없는 바닷가에서 낚시와 조개잡이로 먹고살며 그림을 그렸어요."
지금은 부인이 된 '미녀 화가'와 곳곳을 떠돌며 캠핑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느낌은 논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부인 어깨넘어로 배운 그림은 당시 미국미술계에서 유망주였던 부인보다 앞서갔다.
1985년 세계 현대미술 중심지였던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전시한후 신표현주의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1987년부터 한국에도 알려져 대형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어줄 정도로 '화가 최동열'의 입지를 굳혔다.
한곳에 머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꽃과 여인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실크로드와 티베트 네팔 라다크 시킴등을 돌아다니며 벽화공부를 했고 2011년부터 안나푸르나 촘롱마을에서 작업후 히말라야로 들어갔다.
사계절이 다 있는 히말라야에 푹 빠져 1년에 석달씩 정착했다. 촘롱마을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히말라야의 변화무쌍한 산봉우리를 화폭에 품었다. 또 칸첸중가를 찾아 종그리에서 머물며 고무줄처럼 욕망을 단순화했다.
눈이 깊어 푹푹 빠지기도 하고, 장갑 낀 손은 얼어붙어 손가락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매일 시간마다 변하는 표정, 변덕을 부리는 히말라야 숨결은 그를 끌어당겼다.
카메라로 찍어 그리면 될 걸 하는 쉬운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앞에서 느껴야 작업한다"며 고생을 사서한다.
장갑 낀 손에 느낌이 오지 않아 손가락 움직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추위에 빨리 마르는 알키드 오일을 다루기도 쉽지 않다. 짙게 낀 안개와 이슬비 등으로 캔버스가 젖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해발 4000m에서 움직이는 붓맛은 그만이 느끼는 마력이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그려낸 그림은 거칠고 둔탁하다. 선과 색으로 툭툭하게 포착한 그림은 산을 바라보는 느긋한 누드의 여인의 풍만함이 함께 담겨 '삼각기법'의 재미있는 감상법도 묘미다.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한 품에 그렸던 히말라야 그림을 들고 그가 국내에서 7년만에 전시를 연다.
오는 3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은‘신들의 거주지-안나푸르나, 칸찬중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2011년 봄 네팔 히말라야 중부의 안나푸르나 산맥을 돌아다니다 현지에서 붓가는대로 풀어놓은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누드 여인이 마주한 히말라야 설산은 말이없다. 탐욕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픈 작가의 인생과 같은 예술이 담겼다.
20여년을 '떠돌이 화가'로 지내다 히말라야에 정착한 그는 "고봉에 오르면 “와, 집에 왔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편안하다"며 히말라야와 궁합을 자랑했다.
화가야 말로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는 그는 “남은 삶을 히말라야의 얼굴을 그리겠다”고 했다.
뒤태를 보이며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누드의 여인은 작가의 부인. 히말라야와 삼각관계에서 빠져나온 그는 "이젠 히말라야에서 내려왔으니 뉴욕에 있는 부인한테 가봐야죠."라며 껄껄 웃는다.
이번 전시와 함께 화가가 되기까지 인생역정과 그의 예술 미학 에세이를 담은‘아름다움은 왜?’(디자인하우스)도 출간했다. 전시는 16일까지(02)734-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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