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승혁(38)씨는 약 3년 전부터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캐피탈사 대출 등을 끌어썼다. 월 수입은 한정됐지만 병원비로 인한 빚이 계속 늘어나다보니, 그는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상환하는 '돌려 막기'로 근근히 버텼다.
그러나 결국 얼마 전 한계에 달했고 몇 달째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씨가 진 빚은 원금만 5000만원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민행복기금 지원대상은 1억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받고 올 2월말 현재 6개월 이상 연체자에 제한되는데, 이 씨는 '안타깝게도' 연체 기간이 조건보다 짧은 것이다. 국민행복기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이씨가 더 억울해 하는 것은 '정부 지원을 노린 의도적 연체자'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모럴해저드 확산을 막기 위해 비교적 장기간 연체한 채무자들을 국민행복기금 지원대상으로 정했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 출범 후에도 성실상환자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은 단기연체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아울러 서민이 아니라 사실상 은행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란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알고 보니 은행행복기금?'
1일 정치권과 소비자단체 등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이 정작 '은행행복기금'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협회는 지원대상에서 담보대출을 제외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전체 부채의 40% 이상인 주택담보대출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금소협은 "현재 부실채권 시장은 유암코와 우리F&I가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지난 한 해 유암코는 영업이익 1298억원, 우리F&I는 지난해 3분기 기준 3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들의 부실채권 돈 벌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주고, 이 시장을 자산관리공사에 내주지 않기 위해 담보대출을 국민행복기금에서 제외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높은 채권 매입가율과 금융회사 이익분배도 논란 거리다. 6개월 이상 연체된 신용대출은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아 부실채권시장에서 보통 5% 미만의 금액으로 거래된다는 게 금소협의 설명이다.
금소헙은 "금융회사 연체자 59만5000명의 채권은 9조5000억원 정도인데, 장기채권 매입비용을 8000억원 정도로 잡은 것을 감안하면 매입가율은 8~10% 정도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부실채권을 비싸게 매입하고, 향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회수된 이익을 금융회사와 배분할 계획까지 갖고 있는 것은 국민이 아닌 은행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형평성 논란…"단기연체자는 도덕적 해이자?"
모럴해저드의 확산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실상환자와 의도치 않은 단기연체자를 지원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재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421만1000가구로 이 중 금융대출이 있는 가구는 156만4000가구로 추산된다.
저소득층 금융대출가구 중 지난 1년간 연체 경험이 있는 가구는 49만7000가구로 이중에서 국민행복기금의 수혜 대상이 나온다. 이런 경우 빚을 성실하게 상환한 106만7000가구는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 중 비연체가구는 가처분소득이 72만3000원에 불과하고 채무상환 비율이 99.3%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8일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 주관으로 열린 가계부채와 관련한 간담회에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현장에서 상담을 해보면 의도적인 채무 회피는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모든 채무자를 잠재적인 도덕적 해이자로 몰아 세워선 안 된다는 의미다.
그는 "10년간 은행과 대부업체가 돈 빌리지 않으면 손해인 것처럼 호도했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돈을 빌려준 곳은 금융권"이라며 "금융권에 책임은 묻지 않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언급하면서 조정프로그램을 논의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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