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장기 불황 속에서 조선·철강 산업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국내 기업들이 고사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0년대 이후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국내 조선 철강 업계가 중국산 제품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앞서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지만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 철강업계, 중국 저가 공세에 ‘백기’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최근 중국산 제품에 대응하기 위해 저가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월등한 품질을 앞세워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한 대응 자체를 하지 않았던 국내 철강업체이 오랜 불황과 그에 따른 중국산 제품의 시장 잠식이 가속화하면서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부제철 등은 올해 초부터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던 기존 전략을 수정해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열연이나 후판 등 판재류를 중심으로 저가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현대제철의 경우 형강 부문에서 저가 제품을 내놓은 상황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근 건설업계 등 철강 제품 수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서 중국의 내수 잉여 제품들이 원산지를 속이고 싼 가격에 국내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들도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철강협회를 중심으로 원산지 표시 위반 등의 불법 유통 철강재들에 대한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자사에서 생산하지 않는 특정 사이즈의 형강제품들을 중국에서 직수입해 패키지로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저가 제품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동국제강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제품들에 시장을 내주지 않기 위한 조치”라며 “동국제강 입장에서도 모든 강종을 같이 다뤄 (중국 제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업계, 中 정부 지원에 궁지, 기술력 격차도 축소
조선업계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액 기준으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세계 물동량의 20%을 쥐고 있는 중국이 이를 앞세워 글로벌 선사들의 수주를 따내고 있고, 중국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조선사들이 저가 공세로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 나가고 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의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 급감한 378억 달러에 그친 데 반해, 중국의 수출액은 10.3% 감소한 392억 달러를 기록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서도 러시아의 국영 조선공사(USC)와 같은 중앙정부 차원의 조선공사의 설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각 지방에 100~200개의 중소 조선소가 난립하고 있는 중국이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까지 받게 될 경우 국내 조선사들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조선업은 결국 금융 싸움이다. 금융지원이 많을수록 수주를 많이 끌어 올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며 “중국이 정부 의 금융지원과 더불어 자국의 해운물동량을 무기로 글로벌 선주들이 발주하는 계약을 따내면서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양 선임연구원은 다만 “향후 조선업계는 고연비 선박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분야에서는 우리가 중국에 월등히 앞서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금융지원과 함께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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