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민주화 관련해서 상임위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여야 간에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목한 것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정무위는 대기업 계열사 간의 거의 모든 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해 제재를 강화하고, 이에 대한 입증 책임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기업 쪽에 지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강력한 규제와 압박이 자칫 대기업의 건전한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4ㆍ1 부동산 정상화대책 발표에 이어 조만간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 제출을 앞둔 시점에서 투자가 위축되면 정부의 경제활성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애초 대통령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아간 방향으로 우리 기업들이 움츠러들 수 있는 규제가 거론되니 이에 대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대처하라는 의미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사익 편취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만들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정당한 투자활동까지 위축시키는 것이 새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정당한 경제활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시장질서를 세우겠다고 수차례 강조해왔고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 철저히 과징금을 물리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지만 정무위에서 논의 중인 공정거래 관련 법안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인식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행위 근절’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 강화 ▲대기업 지배주주ㆍ경영자 중대범죄에 사면권 행사 제한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부당내부거래 금지규정 강화 및 부당 내부거래로 인한 부당이익 환수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비교해 규제에서 더 많은 차별을 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많이 노력을 하는데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 것은 아닌지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외국인투자기업 및 주요국 주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다양한 지원과 규제 완화를 약속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에도 이에 상응한 규제 완화 등 지원을 베풀어 투자 활성화를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박 대통령이 이날 우려를 표명한 것을 놓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0일 밖에 되지 않아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과 절실함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부족이 우려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경제민주화는 지난해 총ㆍ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간판공약‘이었지만 지난 2월 인수위가 5대 국정목표를 발표할 때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빠지면서 후퇴 논란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경제민주화가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추진 과정에서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제약하는 일은 없어야하며 이는 그동안 제시한 ‘대기업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한 점은 반드시 시정한다’는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사항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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