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조현오(58) 전 경찰청장이 법정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얘기를 한 유력인사는 임경묵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라고 밝혀 파장이 커지고 있다.
조 전 청장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전주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2010년 3월 31일 강연에서 말한 내용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전 임 이사장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대로였다”고 진술했다.
임 전 이사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당선에 기여한 인물로 MB정권 출범 이후 국정원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해 지난달 사퇴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 102실장이었던 그는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자행된 북풍공작 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조 전 청장은 “임 이사장은 국가정보기관 사무관 특채 때 첫 출입처가 검찰이었기 때문에 발언을 해 줄 당시 법무장관, 검찰총장, 수사기획관과 가까운 사이였다”며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임 이사장이 한 얘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연하기 일주일인가 열흘 전 쯤 임 이사장과 서울의 모 호텔 일식당에서 만나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며 “(차명계좌 관련 내용에 대해) 지나치듯 얘기해 줬는데 강연 도중 그 얘기가 떠올라 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했던 당시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로부터 ‘이상한 돈 흐름이 발견됐었다’는 내용을 들었고, 대검 중수부 금융자금수사팀장을 지냈던 법무사 이모씨로부터 같은해 12월 구체적인 얘길 들었다”며 나머지 발언의 출처 2명을 잇따라 공개했다.
검찰이 “너무나 정보력이 뛰어나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수차례 독대하고, 검찰 고위직과 친분이 있다는 유력인사가 임 이사장인가”라고 묻자 조 전 청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임 이사장을 즉시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강연 전에 들은 내용에 대해 피고인의 검찰조사 당시 진술과 1심 법정 진술이 엇갈렸다”며 “피고인이 누구로부터 어떤 내용을 들었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연 내용의 진위가 쟁점이며 입증 책임은 피고인에게 있다”며 “재판부는 진실을 발견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발언의 출처로 지목된 임 전 이사장은 “그런 내용의 얘기를 한 적도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임 이사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재판부는 직권으로 구인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도 “임경묵씨를 알지 못하고 조현오씨가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 차명계좌가 확실히 없다고 얘기 했었다”며 “조씨가 법정에서 한 말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31일 일선 기동대장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바로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2월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조 전 청장은 보석 심문에서 “강연 발언 출처 3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해 구속된지 8일 만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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