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이 복귀함에 따라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에 걸맞게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출신의 김 의원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업인의 길을 걷던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상도동계로 분류된다.
이후 1996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제15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18대 국회까지 부산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하며 당내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의 정치적 도약은 박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인 2004년 사무총장에 발탁되면서부터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이 2007년 17대 대선경선에 도전했을 때 박근혜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경선전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친이(친이명박)계에 이재오가 있었다면 친박계에는 김무성이 있다”는 말과 함께 친박계의 좌장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가 주도하는 공천에서 탈락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박풍(박근혜 바람)’을 업고 부산에서 4선에 성공한 뒤 복당했다.
‘무소속 친박연대’를 결성해 12석을 당선시켰고, 부산 지역에서 6명의 친박 성향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도록 만든 장본인으로 꼽힌다.
부침도 있었다. 2009년 당 주류인 친이계는 당 화합을 내세우며 그를 원내대표로 추대하려 했으나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김 의원은 2010년 ‘세종시 정국’ 때 박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고수와 달리 일부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절충안을 제시하며 박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사실상 결별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 의원을 향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정치적 고난의 길이 시작됐다.
그해 5월 김 의원은 원내대표가 됐지만 이미 탈박(탈박근혜) 대열에 서 있었지만 2012년 4·11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백의종군까지 선언하면서 낙천자들의 연쇄탈당을 막았으며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이다.
김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고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권창출의 일등공신 반열에 올랐다.
그는 올 10월 재·보선을 전후로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악력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강한 김 의원의 스타일상 ‘힘 있는 당 대표’로 당청관계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 김무성 당선인 약력
△1951년 부산 출생 △부산 화랑초등학교 졸업 △경남중·중동고 졸업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 △동해제강 전무이사 △삼동산업 대표이사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총무국장·국회행정실장·기조실차장 △민자당 의사국장·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 후보 정책보좌역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비서관·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사무총장·원내대표 △제 15~18대 국회의원 △박근혜 대통령 후보 총괄선거대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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