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남덕우 전 총리 추모> 김영주, 마지막까지 본분 다 한 지암의 비서관

  • 김영주 전 산자부 장관, 남덕우 전 총리 장례일정 모두 챙겨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5일간 이어진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 장례기간, 고인의 빈소 문 앞에는 늘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서 있었다.

구겨짐이 없는 회색톤의 양복 정장과 흰색 셔츠 및 검정 넥타이를 맨 그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자모든 조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고 빈소로 모시며, 유가족을 챙기는 일을 혼자 도맡아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맡겨도 크게 흠 잡힐 일이 아니었건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조문객 발길이 뜸한 시간에조차 혼자서 묵묵히 서 있기까지 했다.

장관까지 지낸 그였지만 공동 장례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맞이할 때면 한발 뒤로 물러서 대화를 경청했다.

22일 환송예배에 이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된 고인의 영결식과 안장식에서도 슬픔을 느끼는 중간 중간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 지를 살피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적어도 남 전 총리의 장례 기간 동안 그는 35년전 경제부총리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던 젊은 비서관으로 돌아가 있었다.

김 전 장관이 고인의 보좌관을 맡은 것은 그의 나이 28살 때인 1978년. 행정고시 17회로 제정경제원에 들어와 3년 만에 당시 경제부총리로 국가경제 정책을 총 책임지고 있던 고인을 모시게 됐다. 김 전 장관이 비서관으로 일을 시작했을 무렵 전후는 고인이 자신의 주도로 1년전 시행한 부가가치세법이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며 수세에 몰렸던 시기였는데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일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고인을 따라다니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지만 그는 맡은 바 일을 해냈고, 자리에서 물러난 지 20일 만에 1979년 경제특보로 복귀한 고인은 다시 김 전 장관을 비서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김 전 장관은 기자들에게 “항상 무언가에 골몰했던 탓에 엘리베이터를 타도 아무 층에서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식당에서는 자신의 신발이 아닌데도 신고 나가 다시 바꿔드린 경우도 있었다”고 고인의 일화를 떠올렸다. 공무에 바빠 자신의 신변은 잘 돌보지 않아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기에 고인의 비서관들은 항상 그에게서 한눈을 팔면 안됐고, 김 전 장관도 그렇게 보좌했던 비서관중 한 명이였다.

고인이 된 남덕우 전 총리는 그의 자서전에서 정부에서 마련된 공무원 연수 계획에 따라 미국에 유학했던 인재들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김 전 장관에 대해 “시카고 대학교에서 명성 높은 경영학 석사를 받고 돌아왔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후 김 전 장관은 재정제원, 예산청, 기획예산처를 거쳐 대통령 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재정경제부 차관보 등,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뒤 2007년 산자부 장관에 취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