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국민을 허탈과 분노로 몰아넣었던 '윤창중 파문'은 과연 이대로 묻히나. 22일 사표가 수리된 이남기 홍보수석과 11일 반박 기자회견을 한 윤 전 대변인은 지금껏 잠적한 채 아무런 말이 없다.
그날의 진실은 당사자들 만이 알 것이다.
이 홍보수석은 최근 주변인사들에게 “윤창중은 내 인생 최대의 악연(惡緣)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 말에선 억울함과 원망, 한탄이 짙게 배어 있다.
새 정부 출범 94일 만에 청와대를 떠나는 1호 수석이 된 이 홍보수석에 대해 청와대 내에선 ‘안타깝다’는 분위기다.
이 홍보수석은 춘추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기자들과 잦은 술자리도 가졌던 역대 홍보수석과는 참 많이 달랐다는 게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언론 앞에 잘 나서지 않았던 이 수석을 두고 PD출신인 방송인이었기 때문인지 대언론 업무인 공보보다는 PI나 메시지관리 등 홍보에 더 잘 맞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내 동료 수석·행정관들은 “참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에 성심껏 부하 직원들을 돌보고 그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 홍보수석은 청와대 가톨릭 신우회 회장을 맡아 종교 활동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홍보 수석이 윤창중 전 대변인에게도 참 잘해줬는데, 은혜를 악으로 갚는 꼴 아니냐”며 "사실 내부에선 이 홍보수석을 '희생양'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다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윤 전 대변인은 깐깐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평소 기자들과도 통화하면서도 언성을 높이거나 욕까지도 서슴지 않는 등 기이한 언행으로 청와대 내에서도 늘 질타의 대상이었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은 이 수석 밑에 있으면서도 상관으로 제대로 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내에선 사실 이 홍보수석의 사의 표명 후 열흘이 넘도록 사표 수리가 지체되자 박 대통령이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미국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결단을 내릴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미국 측의 수사 결과 발표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 수석이 다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도 있었다.
김행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사표 수리가 늦어진 데 대해 “정권 초기 출범 멤버고 해서 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고민하셨다는 건가”라는 질문에 “좀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 수석의 사의를 받아들이기까지 고민을 거듭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김 대변인은 추가 문책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이 홍보수석의 사표 수리를 끝으로 ‘윤창중 사태’를 사실상 마무리짓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정치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은 안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남기 한 사람이 책임진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잠적, 청와대의 모르쇠, 이남기 전 홍보수석에 대한 조용한 사표 수리 등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 위한 듯한 청와대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사건을 덮으려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 등 여권 일각에서는 이 전 홍보수석이 방송인 출신이고, 윤 전 대변인도 현역 기자 시절 현장 취재경험이 적어 언론인들과 스킨십이 부족했던 만큼 이번에는 언론 친화적인 인물을 후임으로 지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조직장악력이 뛰어나고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성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감각을 겸비한 능력을 조건으로 꼽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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