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한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니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 불과 수 년 전만해도 이 질문을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치던 기업들이지만 지금은 한 번 정도 해볼만한 생각이라고까지 여긴다.
한국에서 출범해 한국에서 성장했고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 기업들이다. 성공을 보장해줬던 ‘한국’이라는 배경이 이제는 떼고 싶은 꼬리표가 된 것이다.
치열한 전투에서도 승장은 도망치는 패장과 병사들을 위해 퇴로를 열어주는 것을 미덕이자 예의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경제 민주화라는 담론에 맞물려 갑의 횡포, 조세피난처, 재산 은닉 등 ‘부정’을 내포하는 모든 단어들이 기업과 동일화 됐다.
잘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가하는 죗값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너무나 책임과 처벌에만 몰려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 기업의 부정이 드러나면 다른 모든 기업에게도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다른 이들이 아닌 정부와 정치권에서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과거 정부보다 출범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규제와 압박의 강도가 수 배 더 강하다고 여기고 있다.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있다. 하물며 수 십명에서 수 만명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기업들인데, 가혹한 매질만 계속한다면 그 여파는 기업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기업과 거래를 맺고 있는 협력사와 직원,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기업과 정부가 다른 점은 생존을 위해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생존하려면 영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말로 기업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본사 해외이전이라는 결단을 실행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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