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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인사동 선화랑에서 재불화가 이종혁 화백이 평생 그려온 '추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약을 먹듯 그림을 그렸다."
'詩를 그린 추상화'로 불리는 재불화가 이종혁(75)화백이 한국에서 13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오는 20일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여는 전시에는 50여년간 프랑스에서 치열하게 그려온 그림 45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앞두고 선화랑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의 의료기술도 좋아지고 참 많이 변했다"고 했다.
왼쪽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흔적이 남아있는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투석기를 꽂은채 병원에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몸이 안좋았던 그는 늘 병원신세를 졌다. 최근 2년전부터 병원에 누워있던 그는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림을 그려야 했다. "나는 화가다 .한국에서 초대전을 해야 한다"며 병원을 나간다고 했을때 의사는 "나가면 죽는다" 고 했다.
투병생활에도 그림을 그리면 마치 약을 먹는 것 같았다. 고통이 없어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도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쌓이고 한국에서 초대전 날짜가 잡히자 더욱 살 것 같았다. 파리의 병원에서는 쉽게 허락을 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있는 병원을 알아봤다.
"죽을 각오를 하고 한국에 왔는데, 파리보다, 한국 의료시설이 훨씬 더 잘되어 있더라"며 그가 웃음을 보였다.
옆에 있던 부인은 "그림좀 그만 그렸으면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이 누렇게 변한 스크랩북을 펼쳐보였다. 파리에서의 주목받았던 전시기사와 함께 '검은 콧수염'의 건강한 이 화백의 모습이 눈에띄었다.
1970년대 말 '공간속의 환상'시리즈로 마치 4차원적 시각세계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김창열 남관 이성자화백과 나란히 파리 화랑에 속해 전시를 하며 세계 미술시장에서 이름을 날렸다. 한류, K-아트 원조인셈이다.
"검게 칠해도 봤는데 머리하고 안어울려요." 흰 콧수염을 매만지며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던 이 화백은 "평생, 화가 하길 잘했다"며 낮게 말했다.
'꿈꾸던' 파리에서 유학하며 화가로서 꿈을 이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굶기도 다반사였고, 마땅한 직업이 없이 설거지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은, 그리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화백은 "그림은 종교와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몰두할수 있는 기질을 가져야 한다"며 화가로서 자부심을 보였다.
스물다섯살때인 1963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블란서 국비 유학생 1호'로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전공인 조각보다 회화에 심취했다. 파리 아카데미 드퓨에서 회화를 에꼴드 보자르에서 조각을 동시에 익혔다. 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등 해외에서 조각가로 활동했지만 70년대부터 회화작업으로 전환, '조각같은 회화'로 독창적인 색면추상작업으로 지금껏 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을 두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곡선과 직선,색과 빛,의식과 환상 등이 서로 얽히고 조화돼 신비로운 미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했고,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로제 부이오는“이종혁은 빛살로 아롱지는 형상을 통해 음악적 효과를 나타내는 작가”라고 극찬했다.
"어느날 교회에 갔는데 유리창사이로 들어오는 빛에서 신비로움을 본 이후 '하얀 빛'에 매료됐지요."
화려한 색면분할의 추상의 향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상상의)소설처럼 쓸 수 있는 것이 추상"이라며 "내 그림속에는 어렸을때 놀던 모습과 연애하던 여자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하얀(색)빛을 주조로 '빨주노초검' 오방색의 터치감과 형태감이 살아있는 이 화백의 '순정'이 담긴 색면 추상 전시는 7월3일까지 열린다.(02)734-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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