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박재홍 기자= 지난 2005년 11월 15일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단 회의.
박용성 회장의 사임으로 열흘이 넘게 공석이 된 차기 회장 후보를 놓고 논의 끝에 손경식 CJ 회장을 추대했다. 차기회장설이 유력했지만 결정을 미루던 손 회장은 결국 이날 회의에서 회장직을 수락했다.
당시 정부도 재벌을 대상으로 강력한 압박을 해 온 가운데, ‘재계의 쓴소리’로 통하던 박 회장이 전격 사임해 자칫 산업계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11월 22일 당시 새로 지은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서울상의 임시의원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손 회장은 일주일이 지난 29일 열린 전국 지방상공회의소 대표들이 참석한 임시의원총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정식 선출돼 30일 취임식을 가졌다.
손 회장의 당시 취임이 눈길을 끈 또 다른 이유는 전경련 초대 회장을 역임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1961년 8월~1962년 9월) 이후 범 삼성가에서 처음으로 배출한 경제단체장이라는 점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의 처남인 손 회장은 외조카인 이재현 회장과 함께 CJ그룹 공동회장을 맡으며 회사를 키워왔다. 범 삼성계라는 배경과 더불어 조용하지만 할 말은 다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재계에서 존경을 받아온 그는 당시 위기에 처한 대한상의를 수습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와 함께 정부와 정치계와도 현안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한상의의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7년 9개월 동안 손 회장이 부임한 대한상의는 회원사의 이탈을 막고, 자체적인 수입으로 재정안정을 이뤄내는 등 국내 최대 상공인 대표단체로서 위상을 키웠으며, 조직원의 능력 향상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긴 시간을 대한상의 회장으로 지내온 그는, 하지만 또 다른 자신의 분신 CJ그룹 사태로 물러나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됐다. 바로 기업의 도덕성 때문이다.
대한상의 취임식에서 손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기 위한 사업에도 더욱 힘을 쏟겠다”며 “먼저 윤리경영, 투명경영이 기업에 확산될 수 있도록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CJ그룹이 불법 혐의로 이재현 회장이 수감되는 등 기업의 윤리경영 의지에 흠집을 냈다. 손 회장의 성격상 대한상의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그는 최근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한 CJ그룹의 최고 원로로서 회사 정상화를 하루 빨리 책임져야 한다는 심정도 사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대한상의 구원투수’는 이제 ‘CJ그룹 구원투수’로 자리를 옮긴다. 손 회장 시대를 마감한 대한상의는 새로운 회장을 추대해야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손 회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다른 경제단체들은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센데다가 국민들의 시선도 따가운 현 상황에서 과연 대한상의 회장을 선뜻 맡겠다고 나설만한 기업인들도 드러나지 않는다. 자칫 대한상의도 회장이 공석인 상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개편된 서울상의 부회장단은 총 16명으로 강덕수 STX팬오션 회장,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김윤 대림산업 부회장,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 심경섭 한화 사장, 박용만 두산 회장, 서민석 동일방직 회장, 신박제 엔엑스피반도체 회장,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등이다.
역대 회장의 상당 수가 대기업 오너들이 맡아왔다는 점을 놓고 보면 후보자는 상당수로 좁혀드는데, 그중에서도 두산그룹에서 창업주인 박두병 회장과 정수창 회장, 박용성 회장 등 3명의 회장을 배출했고 대한상의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박용만 회장을 추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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