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이미지도 지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술, 맥주나 샴페인 처럼 마실 수 있는 술로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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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잣 생막걸리 |
잣·콩 등 견과류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 특산품을 담은 견과류 막걸리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경기도 가평에서 생산된 생 잣을 넣어 만든 '가평 잣 막걸리', '포천 이동주조'의 '검은콩 막걸리', '청주 조은술 세종'의 '알밤 막걸리' 등이 그것이다.
요즘같은 무더위에 갈증을 해소해 줄 막걸리가 있다. 바로 '밀 막걸리'이다.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지나 봄에 추수하는 밀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봄·여름·가을을 지내는 쌀과는 다르게 밀은 연간 평균 기온이 3.8℃ 이상이면 지대에서 경제적인 재배가 가능할 정도로 대표적인 찬 성질의 곡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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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막걸리 |
경기 지역을 대표하는 '지평 막걸리'는 밀 막걸리로 유명하다. 1925년 양평군 지평면에서 양조장을 시작, 4대째 가업을 이으면서 9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밀 특유의 칼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밀은 쌀보다 잘 뭉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두툼한 덩어리가 술잔에 담기기 때문에 밀 막걸리를 잘 흔들어 마셔야 한다.
막걸리는 시원하고 청량감 있게 마시는 술로 알지만 따뜻하게 달여 마시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어머니의 술이란 모주(母酒)이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어머니인 노씨부인(盧氏夫人)이 만든 술이라고 해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고 불렸다. 현대에는 ‘대비’자를 빼고 ‘모주’라고 불린다. 모주는 한약재를 넣고 하루 동안 끓인 것으로 알코올도수가 1.5%인 것이 특징이다.
달여 마시는 막걸리는 증발 온도가 물보다 낮은 알코올의 성질로 인해 한번 달이게 되면 알코올 도수가 급격히 낮아진다. 이에 해장술, 아침 식사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막걸리의 변신은 무죄…톡 쏘는 샴페인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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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연구관이 샴페인 막거리의 거품을 선보이고 있다. |
얼마전 대한민국 국책연구소인 농촌진흥청은 막걸리의 탄산 함량을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샴페인이나 생맥주처럼 청량감이 뛰어난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는 연구결과로 평가된다.
농진청은 "기존 막걸리에도 탄산이 들어 있는 제품이 있지만 이들 제품이 발효, 살균을 한 뒤 인위적으로 탄산가스를 주입한 것에 비해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자연적으로 탄산을 만들어내 청량감이 뛰어나다" 강조했다.
샴페인 막걸리 기술의 핵심은 2차 발효 과정에 있다.
쌀 고두밥에 누룩과 물, 효모 접종이라는 막걸리 1차 발효 과정은 기존 막걸리와 같지만 여기에 발포성이 뛰어난 당분을 용기에 넣어 2차 발효를 하면 탄산가스가 자체적으로 발생한다.
당분의 양에 따라 발포성 조절이 가능하며 당분은 천연과즙에서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과와 배, 포도 당분을 첨가할 경우 탄산이 주는 청량감과 과일 특유의 다양한 풍미도 막걸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특히 샴페인 막걸리는 2차 발효 과정을 통해 일반 막걸리에 비해 침전물의 양이 50% 이상 줄어들기 때문에 옷에 묻었을 때 냄새나 얼룩이 없어 축배주로도 안성맞춤이라고 농진청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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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연구관이 샴페인 막걸리를 선보이고 있다. |
정석태 농진청 발효이용과 연구관은 "막걸리를 기피하는 소비자의 대부분이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맛과 맥주와 같은 청량감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며 "이번 샴페인 막걸리 개발로 새로운 애호층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맥주처럼 즐기는 '거품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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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거품막걸리. |
맥주처럼 풍성한 거품과 시원한 청량감을 즐길 수 있는 막걸리도 있다.
농진청이 지난해 개발한 '거품막걸리'는 전통발효기술에 현대적 주조기술을 더해 막걸리 고유의 맛과 색은 유지하면서 맥주처럼 하얀 거품이 일어난다.
거품 막걸리는 맥주처럼 따를 때 1∼3㎝의 높이와 비슷한 거품이 생긴다. 이 거품이 막걸리 고유의 향을 유지해주는 동시에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해준다. 특히 막걸리 거품의 유지 시간은 맥주 거품의 30∼60초보다 긴 2∼3분 정도라고 농진청은 설명했다.
거품 막걸리 제조 과정은 먼저 쌀과 곡류를 섞어 고두밥을 만들고 여기에 물과 누룩을 넣어 당화물(糖化物)을 만든 다음 열처리를 통해 당화물에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protease)의 활성을 완전히 없앤다.
이후 효모를 접종해 발효시키면 프로테아제에 의해 분해되지 않은 단백질이 효모가 만드는 이산화탄소와 반응해 맥주와 같은 풍성한 하얀 거품이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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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거품막걸리. |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과일의 포도당을 첨가, 2차 발효를 하면 막걸리에 포함된 탄산의 양이 늘어 뛰어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포도당의 첨가량에 따라 탄산 발포력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어 청량감 조절 역시 가능하다.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색깔 있는 막걸리 제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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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거품막걸리. |
정석태 연구관은 "막걸리가 다른 술에 비해 선호도가 낮은 이유는 특유의 텁텁한 맛과 청량감 부족 때문이었는데 거품 막걸리는 이런 약점을 극복했다"며 "앞으로 막걸리 제조 기술을 더욱 다양화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국 대표 술이란 명성을 유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공식건배주에 오른 막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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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초청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울산지역의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공식만찬주로 사용됐다. |
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귀빈을 초청해 청와대 공식건배주로 사용한 먹걸리가 있다.
'배혜정도가'의 '자색고구마 막걸리(경기)', '참살이L&F'의 '참살이 막걸리(경기)', 설성사또의 '설성막걸리(전남), '신평양조장'의 '하얀연꽃백련막걸리(충남)'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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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연꽃백련막걸리 |
이 가운데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신평양조장'의 '하얀연꽃백련막걸리'는 사찰 곡차를 현대식으로 복원하고 발효할 때 연잎을 첨가하는 등 고급화를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막걸리이다.
하얀연꽃백련막걸리는 이름처럼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판매된다. 용량은 일반 막걸리의 절반 수준이지만 가격은 2배이상 높다.
신평양조장은 1933년에 설립, 김동교 신평양조장 부사장의 할아버지 대에 시작해 아버지, 아들까지 3대를 이어오고 있다. 하얀연꽃백련막걸리는 2000년대 초부터 고급 막걸리를 콘셉트로 기획한 제품이다.
김 부사장은 "지역 막걸리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고급화 전략을 써야 승산이 있다"며 "고려시대까지 사찰은 주류유통의 핵심장소인만큼 다양한 소재로 빚은 곡차가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잎이 주는 은은한 향은 텁텁한 이미지의 막걸리에 새로운 반전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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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초청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울산지역의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공식만찬주로 사용됐다. |
지난 5월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초청 재외공관장 만찬과 지난해 3월에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공식건배주로는 '복순도가'의 '복순도가 막걸리(경남)'가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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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도가 손막걸리 |
복순도가 막걸리는 방부제나 인공균을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국내산 햅쌀과 누룩을 사용, 전통방식 그대로 항아리를 이용한다.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자연 생성되는 탄산으로 인해 샴페인과 같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개봉할 때 발효과정에서 일어나는 천연 탄산으로 인해서 흔들지 않아도 저절로 막걸리가 혼합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부부가 삼베를 이용해 누룩을 직접 짜는 작업공정 때문에 하루 생산량은 50~70병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1병에 8800원으로 일반 막걸리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주문이 들어오는 만큼만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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