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K씨의 주문은 단순한 서비스 개선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열탕 온도가 너무 높으니 알맞게 조절해 달라", "타올의 품질과 색상이 맘에 안든다. 당장 교체해야 한다" 등 영세 소규모 사업자가 해결하기에 무리한 요구들을 고집했다.
서울시 직소민원실 관계자가 이 목욕탕을 찾아 조사를 해보니 동네 주민들이 큰 불편없이 즐겨 찾는 평범한 곳이었다.
오리려 K씨가 장기 회원권을 끊고 매일 같이 와서는 이런 저런 까다로운 요구들을 늘어놓는 통에 영업방해 수준의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목욕탕 주인의 하소연이었다.
#강남의 한 할머니는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속상해 집근처 술집을 찾았다가 술값이 100만원 넘게 나왔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취한 손님에게 바가지 가격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홧김에 고급 양주 2병과 맥주, 과일 안주 등을 주문해 마셨는데 무리한 금액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업소측은 계산서대로 청구했다며 무전취식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맞섰다.
이 할머니는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여의치 않자 서울시를 찾았다. 현장방문과 수차례의 설득끝에 접점을 찾았지만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 진땀을 빼야 했다.
아주경제 김진오·강승훈 기자=서울시에 박원순호가 출범한 뒤 시장실 문을 두드리는 시민들의 발길이 더욱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의 문턱을 낮추고 현장위주 소통에 나선 결과물이지만 황당한 민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의 부임 직후부터 올해 6월까지 시장에게 제안된 민원은 총 1만3555건으로 집계됐다. 2011년 11~12월 2021건, 2012년 8653건, 올해 상반기에는 2881건이 각각 접수됐다.
앞서 1년 가량 재임한 오세훈 전 시장 당시에는 매년 7000건 안팎의 민원이 들어왔다. 1년 새 민원 규모가 1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 시청에 입성한 뒤 1주일만에 민원업무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시장실 직속 민원보좌관실을 행정1부시장 아래 감사관 민원조사담당관 직소민원실로 바꿨다.
시장과 직접 통하는 온라인 신문고도 과감히 손질했다. 10년이 넘도록 운영되던 '시장에게 바란다'란 타이틀에는 이름을 내걸어 '원순씨에게 바랍니다'로 각색했다. 부드럽고 편한 이미지를 부여해 대(對)시민 접근성을 높이고 신뢰를 쌓겠다는 전략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민원이 봇물을 이뤘다. 2012년 3월까지 5개월간 5139건이 접수돼 한 달에 평균 1000건을 넘어섰다. 서신민원도 2010년 313건에서 작년 1478건으로 4배 넘게 급증했다.
박 시장이 강조하는 '공공기관 문턱 낮추기'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민원의 양은 늘었지만 오히려 질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오 전 시장 재임시 시정 제안 및 개선사항에 관한 내용이 전체 76%를 차지했다면, 현재 10건 중 4건의 민원은 문의를 재차 확인하거나 감사·격려, 하소연 등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
시민소통 창구는 한층 개방됐지만 무차별적 신고로 제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금양 서울시 직소민원실 팀장은 "최근 민원의 40% 가량은 시정과 관련이 없는 이기적 건의 등이 차지한다"며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만큼 인건비 낭비 요소를 차단하기 위한 프로세스 개선과 더불어 시민 스스로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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