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리뷰> ‘일대종사’, 최고들이 보여 주는 아름다운 영화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3-08-21 10:49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감독도 배우도 일대종사급 명연출, 명연기 “놓치기엔 아까워”

영화 <일대종사> 스틸컷. 사진 제공=CGV 무비꼴라쥬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인간에게 진정 객관적 시각이라는 게 가능할까를 늘 의심하는 데다 <열혈남아>(1987),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를 보며 영화의 새로운 형식에 놀라고 스토리를 넘어선 영상과 색채에 매료된 ‘왕가위 키즈’가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영화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영화 <일대종사>를 보기 전에 이미 사랑할 준비가 돼 있었다.

영화는 격투로 시작한다. 마지막 왕조가 몰락하고 자리 잡지 못한 공화정의 혼돈 속에 일본제국주의의 침탈까지 이뤄지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함을 예고하듯 화면은 잿빛 누아르다. 영춘권의 일대종사 엽문(양조위)은 수십의 무리를 홀로 상대하는데 그 움직임이 그야말로 정중동이다. 요란하지 않은 움직임 속에 상대를 가벼이 제치는 손끝 하나에도 기품이 넘친다. 드디어 개중 나은 실력의 권법자와 1:1 결투를 벌이는데 좁은 공간에 가두고 퇴로를 차단하듯 쇠문을 닫는다. 문은 괜히 닫은 게 아니었다. 상대의 가공할 만한 공격력은 마지막 그 쇠문 위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정중동의 움직임만 해도 짜릿짜릿 오감을 불러 깨우는데 우중결투다. 비는, 아니 엽문의 내공 어린 움직임으로 빚어진 빗발은 쿵푸 마스터의 미동이 가져오는 엄청난 여파를 우리 눈앞에 가시화시킨다. 홍콩무술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를 모으는 과장된 괴성과 바위를 부수는 바늘, 사람의 목을 가르는 머리카락의 파괴력 대신 점잖게 무술의 경지를 과시한다. 시작부터 압도돼 <일대종사> 속으로 빠져든 이유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연출의 마스터 왕가위 감독이다. 왕가위는 가히 일대종사급 감독이라고 칭해도 좋을 만큼, 젊은 감독들이 배우고 익혀도 좋을 본을 보이며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일대종사>를 통해 과시한다. 무술을 통해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도도하게 굴러가는 거대한 시대의 바퀴에 치이고 끼이는 사람들의 대응과 선택을 통해 인생과 역사를 자연스레 풀어내는 솜씨에 감탄이 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배우 양조위(량차오웨이). ‘쿵푸’가 우리말로 공부(工夫)이고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자기 수련을 뜻한다는 것을 전해 준 건 이연걸이었지만, 그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뛰어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 주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일대종사>의 양조위는 바로 최고 경지가 무엇임을 깨우쳐 주듯 쿵푸 내면의 힘을 소박하되 힘 있는 동작, 동작에 실어 놓았다. 무술인으로 불리는 성룡도 아니고 이연걸도 아니고 견자단도 아닌 배우 양조위의 성과여서 더욱 눈이 크게 떠졌는지도 모른다.

양조위는 왕가위의 주옥같은 작품 <중경삼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등을 함께하며 배우로서 크게 성장해 왔는데, <일대종사>를 통해 왕가위의 페르소나, 왕가위의 분신으로 불리는 이유를 여실히 확인시킨다. 그리고 어느덧, 거장 왕가위만큼이나 연기 공부(工夫)의 마스터 경지에 올랐음을 스스로 입증하듯 과묵한 무도인 엽문의 아우라를 스크린 위에 재현했다. 실제로 엽문은 직계가족에게만 전수된다는 영춘권의 정통권법을 창시자 양찬의 큰아들에게서 사사하고도, 양찬으로부터 변형된 영춘권을 전수받은 스승 진화순을 존중해 자신은 문하생을 두지 않는 내성적 인물이었다. 홍콩에서 생계를 위해 강습회를 열면서 걸출한 제자가 생겨났는데 이소룡도 그 중 하나다.

<일대종사>에서는 또 한 명의 ‘최고’를 만날 수 있다. 미모와 연기력, 액션 파워를 겸비한 장쯔이는 이 정도의 여배우가 다시 가능할까 싶을 만큼 때로 아름답게, 때로 강력하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왕가위 감독은 엽문의 부인 역을 맡긴 송혜교를 “아시아 최고의 미녀”라고 평했지만, 역시 배우는 연기 속에서 더 아름답게 빛난다. 궁가64수의 유일한 후계자로, 엽문과의 그림 같은 결투 속에서 무도를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는 궁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애절하고 아름답다. 세월을 잊은 듯, 도리어 쌓여 가는 필모그래피만큼 자태와 눈빛에 매혹을 더해 가는 장쯔이가 최고의 감독, 최고의 상대배우와 만나 만개한 모습, 놓치기엔 아쉽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