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이 자발적인 노력 없이 당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한 상태다.
실제로 최근의 국내 금융권은 '상명하복'의 군대처럼, 금융사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당국 수장의 입에만 쏠려 있다는 비난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들은 이달 말부터 월세자금대출 상품을 잇따라 출시할 예정이다.
이미 월세자금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어 외환은행, 기업은행 등이 유사한 상품을 선보일 전망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기존 전세자금대출 대상에 반전세 세입자를 포함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10면>
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각 은행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라 금융감독원이 월세자금대출 활성화를 주문한데 따른 행보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지난 19일 임원회의에서 “최근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 현상으로 월세자금에 대한 금융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집이 없고 전세보증금 마련마저 어려운 주거취약계층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월세자금대출 종합 개선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은행들을 겨냥해 적극적인 홍보를 통한 전세자금대출 취급 확대를 압박했다.
최 원장은 “현재 실적이 부진한 금융권의 월세자금대출 상품 취급을 독려하고, 복잡한 대출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며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은행 지점을 중심으로 관련 상품을 적극 홍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방침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출시되는 전세자금대출 상품이 얼마나 활성화될지는 미지수다.
앞서 금감원 주도 아래 저신용, 저소득자들을 위해 출시된 서민금융상품이 은행들의 소극적인 판매와 소비자들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 외면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도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은행들은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시쿤둥한 반응이다. 은행들은 대출자가 늘 수 있어 좋을 듯 하지만 세입자들이 이자를 꼬박꼬박 낼지도 의문이어서 자칫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다보니 부동산 및 금융 전문가들마저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세를 놓겠냐며 제도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들로서는 수익성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관련 상품 취급에 굳이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
금융감독 당국의 입맛을 맞추는 데에만 급급한 것은 민원 감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최 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 4월 보험 관련 민원 감축을 올해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검사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금감원이 칼을 뽑아 들자 다음 달인 5월부터 곧바로 가시적인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5월 한 달간 금감원에 접수된 전체 민원 가운데 보험 민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6.3%로 은행·비은행 48.1%에 비해 1.8%포인트 작았다.
3월 48.9%에서 4월 50.5%로 늘었던 보험 민원의 비중은 5월 들어 4.2%포인트 감소했다.
보험 민원의 비중이 금융권 보다 작아진 것은 지난 1999년 금감원이 설립된 이후 처음이었다.
보험업계가 자체적으로 민원을 감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지도에 들어가기 전까지 노력을 기울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도 아직까지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이 수수료 인하를 강하게 밀어붙여 시행하고는 있지만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익 감소분을 가맹점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은 스스로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거나, 문제점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금융감독 당국이 제시한 정책방향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